책과 영화이야기

정의와 치욕의 갈림길에서(김훈의 남한산성을 읽고)

데조로 2007. 6. 6. 13:01

  남한산성은 북한산성과 함께 수도를 지키는 사적 제 57호의 조선시대의 산성이다.

작가 김훈은 [칼의 노래]로 독자들과 가까와졌으며, 역사소설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인물이다.

소설 곳곳에 배어있는 예리한 심리분석이나 수많은 역사서를 배경으로 한 중세사의 이야기에 쉽게 책을 덮지 못하는 묘미를 배가시키는 것은 김훈 특유의 문체라고 볼 수 있다.

  벌건 책 표지에서부터 출판사 학고재나 김훈이 어떤 이야기를 담아낼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눈에 들어온 [남한산성]

 

 

치욕의 병자년 겨울의 남한산성 남문

 


 

 

  1636년 병자년 겨울에 청은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조선으로 진격해오자 조선은 남한산성으로 피신한다. 12월 14일부터 이듬 해 1월 30일까지 47일간의 치열한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동영상처럼 뇌리에 또 한번 치욕의 현장을 들려준다.

충절에는 귀천이 없다며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남한산성으로 들어가는 사람과 온갖 핑계를 구실삼아 목숨을 구하기위해 탈출한 사람들이 얼키설키 이끌어가는 역사현장에 수없이 빠져들며 함께 호흡해야 했다.

특히 열악한 배경을 서술한 문구 앞에서는 숙연한 기분마저 느끼며......

 

- 백성의 초가지붕을 벗기고 군병들의 깔개를 빼앗아 주린 말을 먹이고, 배불리 먹은 말들이 다시 굶어 죽고, 굶어 죽은 말을 삶아서 군병을 먹이고, 깔개를 빼앗긴 군병들이 성첩에서 얼어죽는 순환의 고리가 김류의 마음에 떠올랐다.

- 난리통에 얼어 죽고 굶어 죽고 말발굽에 밟혀 죽은 아이들의 넋이 임금을 따라서 성 안으로 들어오려고 눈보라 속을 헤매다가 송파나루에서 날이 저물어 어린 귀신들끼리 끌어안고 울고 있는데.....

- 돼지기름을 먹인 무명천을 마당을 빙 둘러 뒷문 쪽까지 이어진 동상자들의 환부에 싸매려고....

- 겨우내 얼었던 시체들이 녹으면서 악취를 풀어냈다. 우물이 시체로 메워졌고, 무너진 우물 옆에서 매화가 꽃망울을 밀어내고 있었다. 

 

  대의는 꽃처럼 피어날 것이라며 결사항전을 주장한 척화파 김상헌(예조판서)과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는 것이라는 주화파 최명길(이조판서)의 첨예한 대립과 그 사이에서 우유부단한 갈등을 보이는 인조의 입장이 소설을 긴장감있게 이끌어가는 포인트나 시시때때로 변하는 군사들의 심리와 관료들의 행태는 읽는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어떤 것이 진정한 구국인지는 역사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역사의 현장에서 자신의 목숨에 연연하고 있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는 부끄러움이 앞섰다.

 

특히 평안도 은산 관아의 세습 노비인 정명수는 가족의 죽음으로써 혈육의 관계에서 해방되어 자신을 원초적인 노비로 살게한 조선을 향해 복수한다. 청의 통역사가 되어 조선을 항복시키기까지 보여준 정명수의 행태를 보며 자신의 안락을 위해서 조국을 등지고, 욕되게 하는 사람이 더 이상 없기를 작은 소리로 읊조려야 했다.

 

끝내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못할 짓이 없고, 약한 자 또한 살아남기 위하여 못할 짓이 없는 것이옵니다'라고 출성을 권유한 최명길의 말을 듣고 항복을 선언한 인조.

임금의 울음 보다 아마 덧입혀진 민초들의 울음이 더 진한 통곡의 울림이 되었으리라.

 

서날쇠의 작은 충정이나 자살이 미수로 끝났지만 외세에 항복해서는 안 된다는 김상헌이나  척화파가 기꺼이 되어 자신을 묶임당한 채 청의 황제 앞으로 끌려간 신하의 아름다움 앞에서는 눈물이 났다.

 

지금 치욕의 현장인 남한산성에 오른 사람들은 무슨 마음으로 산성을 내려올까?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수많은 젊은 피가 햇빛에 부셔지며 서럽게 흐르는 것을 들여다 볼 수 있을까?

인조가 항복하면서 삼배구고두(세 번 절하고, 이마를 아홉번 찧는 행위)를 행하며 흙냄새를 맡고, 그 흙냄새 속에서 살아야 할 날이 흔들렸다는 문구가 있다.

후손인 우리들은 어떤 생각으로 마음을 다스리며 남한산성을 빠져나오는지 한 번 물어보고 싶다.

자신의 행복뿐만 아니라 대의적인 의미로 살고 있는 이유도 있는지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