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우리학교]를 보고
전교조에서 영화상영을 하였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학기말이라 할 일이 태산같지만 학교의 책임을 맡고 있던터라 동료들을 데리고 문화예술회관을 향했다.
가는 내내 궂은 날씨 탓에 많은 사람들이 오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주최측의 초조함이 그대로 읽어지는 비오는 저녁에 2006 부산 국제영화제 운파상 수상, 2006 올해의 독립영화상 수상에 빛나는 [우리학교]가 드디어 상영되었다.
재일 조선인 동포 1세가 어떻게 [우리 학교]를 개교시켰으며,
민족의 자주권, 정체성, 희망찾기를 위하여 설립된 혹가이도 조선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우리 학교]
민족의 자주성,
그 많은 일본의 핍박과 멸시를 견뎌내며 민족의 긍지를 갖고 버텨온 [우리학교]출신들과 학생 그리고 교사들의 몸짓이 가슴에 하나 둘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교사와 학생이 너무나 인간적인 관계로 이어진 끈끈한 정을 보며 잠시 나의 과거를 오버랩시켰다.
나는 중학교를 가지못해 비인가 학교를 다녔다.
스레트 지붕에 구멍이 숭숭 뚫린 천장에서 빗물이 쏟아지는 날에는 양동이를 갖다놓고 받아내며 공부했던 시절, 그 때의 선생님들은 박봉에 시달린 [우리 학교]의 교사들과 비슷했으며, 가난한 자들끼리 모인 탓인지 공동체 의식만큼은 하늘을 찌를듯 첨예했다.
배고픔에 시달려봐서 어지간한 일에는 동요하지 않았으며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우리학교]아이들 못지 않았으나 그들에게 있었던 민족성은 없었다.
우리는 중학교를 졸업하여도 검정고시를 치루고서야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는데, [우리학교]아이들도 일본의 교육법상 각종학교로 분류되어 시험을 패스해야했고, 각종 대회에서 철저히 배제되었으며, 일본의 지원은 한 푼도 받을 수 없었다.
소수인들의 참혹함이랄까?
굳건하게 민족의 의지를 보이며 일본에 대항하면서 통일을 꿈꾸는 사람들.
고향은 남쪽이지만 조국은 북조선이라는 사람들.
한국이 이데올로기의 이념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북한은 끝없이 재일 조선인들을 지원하고 민족애를 발휘했다고 한다.
한국 국적인 사람들은 서운함을 가지고 있을 법도 한데, 통일에 대한 열망으로 그 서운함을 견뎌내고 있었다.
의식이 있다고 해야할까?
일부러 조선학교에 보내는 부모들은 많은 불이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학교를 선택하고, 지원하며 조국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조선학교 축구부원들이 일본의 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 패배한 후 흘린 뜨거운 눈물을 보면서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
보는 내내 조선인이 되어 나도 그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다큐형식을 빌린 영화였지만 조선학교의 내부를 드러내며 그들이 처절하게 일본과 한국의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와 싸우며 그들만의 색깔을 유지하며 사는 의연함에 다소 경건해지기도 했다.
통일!
요원한 일인 것 같지만 너와 내가 하나되어 큰 미래를 생각하는 어울림의 공동체 의식을 가지면 조금 더 앞당겨지지는 않을까?
일본인 후지시로가 조선학교의 축구부를 맡으면서 조선어를 배워 조선인을 가르치고, 조선학교 아이들이 배용준이나 원빈에게 열광하며 한국을 그리워하듯이 북쪽에 있는 우리 핏줄을 고운 심성으로 바라보는 사고가 있었으면.....
더불어 북쪽에 있는 사람들도 남쪽을 바라보는 시각이 한 핏줄이라는 합일점이 있었으면.....
영화가 끝나고 운전을 해서 순천으로 넘어오는데 빗줄기의 세력은 대단하였다.
운전을 할 수 없도록 퍼붓은 빗줄기가 아마 [우리 학교]가 남쪽과 북쪽에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는 아니었을까?
와이퍼를 작동하며 새로운 희망을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