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의 우울한 하루
3교시가 끝나니 과학 선생님이 학년실로 뛰어온다.
아이들끼리 쉬는 시간에 싸움을 했는데, 입술이 하얘진다며 병원 이동을 하는 것이 어쩌냐고 했다.
얼른 보건실로 데리고 가니 보건교사는 충격을 받아서 그러니 안정을 취하면 될 것이라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 했다.
1-2분 사이에 아이는 거짓말처럼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왔다.
그래도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에 가서 진료 받아보기를 권유하고 되돌아오니, 같이 싸움을 했던 아이가 입술에 피가 묻은 채 학년실로 오고 있었다.
역시 보건실로 데리고가서 응급 처치를 하고 부모에게 알린 후 수업에 임했다.
담임 교사는 병원에 들른 후 2시쯤에 학부모들을 내교시켰다.
그러나 걱정이 된 학부모들는 점심 시간에 왔다.
때마침 점심 시간의 자투리 시간에 곧 있을 행사 준비를 하느라 담임과 학년부장은 부재 중이고.....
몇 분 후 학년실로 오니
한 학부모가 큰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아이들은 꿇어 앉아있었다.
세상에.....
안 봐도 짐작이 간 일이라, 교실에 가서 얼른 수업 준비하라며 아이들을 돌려 보냈다.
교사가 없는 틈을 타서 아이들을 데려다 학년실에 꿇어 앉히는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학부모는 큰 소리로 " 바쁜 우리들을 이렇게 기다리게 해도 됩니까? 아이가 아프면 119를 불러서 병원에 보내면 될 것을 전화해서 학부모 보고 병원에 데려가라는 것은 무슨 처사입니까?"라고 항의한다.
선하게 생긴 담임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도 학부모는 노기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계속 학교 잘못이라는 이야기만 했다.
어지간하면 담임과 이야기가 잘 마무리되도록 하려했으나 나설 수 밖에 없었다.
학부모를 진정시키며 "많이 서운하시지요. 아이가 다쳐오면 부모의 마음은 오죽하겠어요. 아이들의 장난이나 싸움은 흔한 일이니 마음을 조금 넓게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학교에서 환자가 발생하면, 응급 환자일때는 구급차나 학교(교사)차로 보건교사나 담임이 환자를 이송해야하지만, 그렇지 않은 환자일 경우는 학부모에게 연락해서 학부모가 원하는 병원으로 직접 이송하고, 부모가 연락이 되지 않을 때에 보건교사나 담임이 환자를 이송하도록 되어있다"며 잘못 알고 있는 학교보건법을 설명해주었다.
그랬더니 조금 마음을 진정시키는 학부모.
자신의 아이는 일방적으로 맞았고, 평상시에도 폭력에 노출이 많이 되었다는 부모.
여러 명이 연루된 장난이었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의 아들이 잘못하여 싸움으로까지 번졌다고 이야기한 사람은 없다.
모두 학교 친구들 탓이란다.
싸운 아이들은 평상시에도 자잘한 장난기 발동으로 학년실에서 많은 상담을 하는 아이들인데, 부모에게 이들은 착하기 그지없는 모범생이란다.
학부모가 되돌아간 학년실은 어색한 분위기다.
학년 부장인 나도 이렇게 기분이 좋지 않은데 담임의 마음은 오죽할까?
아이들을 잘 지도하지 못한 교사들의 잘못도 있지만 학생들 싸움으로 빚어진 학부모와 담임의 날카로운 신경전에 종일 우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