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스케치

조계산에서 하루를.....

데조로 2008. 4. 13. 22:53

동료들과 함께 조계산(884m)을 올랐다.

조계산은 순천시 송광면에 자리한 나즈막한 도립공원으로 산세가 부드럽고 아늑하여 등산객이 가벼운 마음으로 오르내릴 수 있다.

특히 유명한 사찰인 선암사와 송광사를 품고 있어 여느 관광지와 차별화가 된다고나 할까?

 

접치재에서 등산을 시작하여 장군봉(884m), 굴목재, 천자암, 송광사까지 5시간여를 걸었다.

전날 비가 와서 다소 질척거리기는 했지만 오히려 운무까지 더해져서 신비함과 더불어 묘한 흥분까지 자아내는 조계산엔 4월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얼레지도 모두 고개를 숙인채 비상을 꿈꾸지 못하고 있었다.

헉헉거리며 가장 높은 장군봉에 이르니 희미하게나마 주변의 경관을 마주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정상에 오른 기쁨이 이런 것일까?

쉼없이 흘러내린 땀방울조차 묵직한 무게로 괴롭히던 것이 마알간 웃음으로 재생되고, 산수화의 단골 배경처럼 드리워진 주변은 신선 놀음하는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을 보면......

졸졸졸 흐르는 계곡물도 봄물을 잔뜩 받아 힘차게 소리치고, 연한 새순이 습한 기운 탓에 축 늘어진 모습도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보리밥집에 들러 산나물과 보리밥 그리고 막걸리 한 사발씩을 나누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어릴 적에 가서 어렴풋한 기억밖에 없는 천자암의 쌍향수를 만나러 가는 길.

굴목재에서 어린 대숲을 헤치며 가는 천자암 가는 길은 무척이나 힘들었다.

배를 채운 후에 오르락 내리락...... 진도는 맘처럼 쉬이 나가지 못해 애만타며 가는 길.....

쌍향수(곱향나무)는 천자암 뒤뜰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88호다.

보조국사 지눌과 제자인 담당국사가 중국에서 돌아와 천자암에 이르러 지팡이를 꽂았는데 그것이 자라서 용트림하다 승천하는 용의 형상을 갖고 있는데 어찌보면 스승과 제자 사이의 예를 갖추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높이는 12.5m, 수령 800년이 훨씬 지난 쌍향수는 조계산 8부쯤의 능선에 자리한 나무인데 조계산의 맑은 향을 더한 희귀한 보물이다.

보변 볼수록 전설같은 이야기와 영험함이 오랜 세월을 변함없이 있게한 원천은 아닌가 싶다.

 

 

천자암을 내려오면서는 다리까지 후들거렸다.

너무 많이 걸었던 이유이기도 했지만 운동 부족이 가져온 것이 더 컸으니.... 자성의 소리만 높아질 수 밖에.....

송광사에 도착하니 안도의 한 숨이 나온다.

 

불변의 진리라도 지키는양 송광사는 언제보아도 고고한 자태다.

신라말 혜린선사에 의해 창건된 송광사는 전국의 사찰 가운데서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한 승보 사찰이다.

 

승보 사찰을 에두르고 있는 건물이 물위에 내려앉은 모습은 탱화의 화려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엄숙함마저 묻어났는데 정작 놀란 것은 송광사 입구에 즐비한 벚꽃 터널이었다.

가까이 살지만 벚꽃이 만개한 날을 만나지 못했던 탓에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얼마전 벚꽃을 보자고 떠났던 보성 대원사에 가서 그 꽃 터널을 만나지 못하고 왔는데 조계산 자락에서 뜻하지 않게 만났으니 환희는 배가될 수 밖에......

 

 

도로에서 제멋대로 포즈를 취하며 우리는 봄날 하루를 그렇게 마감했다.

바람에 벚꽃이 하나 둘 떨어져 차창을 두드린다.

떨어진 벚꽃을 따라 창피한 줄도 모르고 뒤따르는 내 미소는 언제쯤 제자리로 올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