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스케치

청마를 찾아서(거제도 기행)

데조로 2008. 5. 11. 00:03

청마를 만나러가는 길은 바람이 거셌다.

며칠간 봄을 누르던 더위가 잠시 꺾인 듯 했으나 그 바람에 묻은 건조함은 어제의 것과 다를 것이 없는 날.

책임을 맡고 있는터라 준비해간 인쇄물을 내놓고 시낭송을 하며 거제도로 향했다.

 

청마 탄생 100주년이 되는 올해에 거제도 둔덕면 방하마을에 청마기념관이 건립되었다.

물론 통영시에서 청마문학관을 건립하고 대대적으로 청마의 고향임을 홍보한 바 있으니 청마를 찾아간 길은 다소 혼란스러울 수 밖에......

 

 

문학기행을 갔던 순천문협 회원들과 함께

 

 

청마 생가의 담장 넝쿨에 게시된 시

 

 

청마 생가 안마당을 차지하고 있는 약력

 

 

최근 4월에 준공된 청마 기념관 앞의 동상

 

 

 청마 기념관 내부 중 일부

 

그러나 통영에 속했던 거제가 거제시로 분리되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 문제는 쉬이 해결될 것이고.....

청마는 거제시 둔덕면 방하마을에서 태어났으나 대부분 통영시에서 생활했고,  청마가 공공연히 자신의 고향은 통영이라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통영사람이라고 생각한 듯 하다.

그래서 거제시와 통영시가 청마 문제에서만은 날카로운 날을 세우고 지자체 홍보에 빠지지 않고 청마를 앞세우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느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시인 이영도와의 사랑에 얽힌 감정을 쓴 시 '행복'의 일부다.

 수많은 여인을 흠모했던 청마가 유독 이영도와의 로맨스만 회자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시가 가진 매력때문일 것이다.

사랑,

어쩌면 시인에게 사랑은 삶의 진정성이며 살아가는 이유이며, 시를 쓰는 근원이 되는 에너지원인지 모른다.

치열하게 사랑하고 고뇌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시가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깃발', '그리움',  '메아리', '생명의 서' 등을 낭독하며 청마를 닮고 싶어하는 많은 문인들의 호흡이 느껴졌다.

그동안 청마가 친일파 명단에 오르내리면서 많은 소용돌이가 있었으나 결국 그는 친일파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어쩌면 깃발처럼 나부끼며 후인들에게 생명에 대한 소중함과 감정의 격정 끝에 매달린 그리움 그리고 사랑을 전파해주려는 의지가 가져온 결과물은 아닐런지....

 

청마 생가의 돌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담장 넝쿨에 청마의 시가 바람에 날리며 하얀 눈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햇살을 받아 윤기 있는 모습으로 살랑거리며 속살을 보이듯 자리한 시를 한편 한편 읽을수록  참으로 곱고 아름답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아름다운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을 어떤 여인이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하는 위험한 생각까지 들기도 했으니.....

 

생가와 기념관을 둘러본 후 5월의 뙤약볕을 받으며 아까시 향이 가득한 묘소를 찾았다.

정갈하게 다듬어진 청마 묘소는 참 인상적이었다.

 

 

물론 묘소 주변에 청마의 시비가 즐비하게 도열하고 있어서 그 읽는 재미가 쏠쏠하기도 했지만 둔덕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저수지의 모습 또한 아름다웠으니.....

이 세상에 없어도 이렇게 따르는 자가 많으니 청마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글 쓰는 작업에 매진하여 걸작을 내놓겠다는 야심찬 희망을 나는 아무도 몰래 나뭇가지에 걸어두었다.

마음에 벌써 바람이 분다.

내일은 그 바람이 어디로, 어떤 빛깔로, 어떻게 나타날지 아무도 모르지만 아직까지 바람이 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