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이야기

눈뜬 자들의 도시(주제 사라마구 )

데조로 2008. 9. 24. 23:35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으려다가 2탄으로 기술되었다기에 주문해서 읽은 책이다.

온통 검정색으로 도배된 책 표지부터 우울한 자화상을 만날 것 같은 예감을 받았다.

주제 사라마구.

1922년 포루투갈의 가난한 농부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9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리얼리즘을 표방한 작가 중에서도 풍자와 상상력은 여든이 넘은 지금까지도 독자를 매료시키는 요소가 되고 있다고 하는데.....

 

 

 

[눈뜬 자들의 도시]는 민주주의의 허상을 고발하는 리포트처럼 보인다.

수도에서 실시된 선거에서 백지투표가 83%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온다. 

백지투표를 한 시민들을 비애국자, 체제를 공격하는 어뢰로 규정하고 그 뒤에 배후가 있다는 믿음을 가진 정치권 인사들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시민들을 압박한다.

정치권의 파렴치한 행동이 따분할 정도로 소설의 중반까지 채워간다.

특히 투표란에 어느 한 사람, 어느 한 정당을 찍도록 규격화된 용지에 익숙한 우리들은 백지투표로 마음을 드러낸 그들이 오히려 존경스러웠다.

그러나 반대편의 그들은 민의를 무서워하지 않고, 그들의 정책성을 합리화하는데 급급한다.

일찌기 우리들이 경험해왔던 것처럼, 아니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정치 현실처럼.....

테러리스트들의 집단적 소행이라고 주장한 그들의 논거를 뒷받침할 증거가 필요했던 그들은 더없는 탄압으로 민중들을 옭죈다.

어느 날 시장이 백지투표를 던진 사람들은 자기들 하고 싶은대로 표현했을 뿐이라며 반정부 시위에 동참하여 정치권이 말하는 백돌이가 된다. 조직화된 그들의 그물체계가 하나둘씩 흩어지고 있는 반증이리라.

죄가 없는 사람은 없다고 했던가.

원론적인 명제를 풀기위해 파견된 경정, 경감, 경사들은 편지 내용을 중심으로 4년전에 있었던 백색전염병(사람의 눈을 멀게하는 전염병)으로 인해 벌어진 일들을 추적(?)한다.

단지 백지투표의 비율이 높은 것은 그때의 사건과 연루되었다는 헛된 믿음 하나로.

모두들 백색질병으로 신음할 때 혼자 세상을 오롯이 보았던 여인의 눈물이나 힘으로 강제했던 남성들의 간음등은 외면한 채....

안과의사 부인이 여인들을 간통한 눈먼 사내를 죽였다는 피의자로 지목되고, 그녀의 의연한 행동을 안 사람들은 서로 자기가 살인자라며 입을 모은다. 끝없는 도청과 미행 그리고 짜맞추는 시나리오에 불복하고 나선 또 하나의 사람.

"우리가 태어날 때 인생의 나머지 기간 동안 지킬 협정을 맺지만 우리 자신에게 누가 내 대신 여기 서명을 했지라고 묻게 될 날이 오게 될지 모릅니다."라는 경정의 말에 어떤 의미가 숨겨있는지 독자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안과의사 부인도, 진실을 밝히려는 경정도 소리없이 죽어간다.

그러나 진실을 알리려고 노력했던 과정이 자기 인생의 최고의 광고며, 그 행복한 사건으로 새로운 영혼을 얻었다하니 픽션이긴 하지만 역사는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주제 사라마구.

그가 공산당원 생활을 오래한 것이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시각을 왜곡시키지는 않았을까?

반대로, 민주주의를 한 발짝 건너서 바라보아 좀 더 객관적으로 쓸 수 있었던 것일까?

그러나 픽션이 많아 현실과의 괴리성이 있는 것은 민주주의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의 한계는 아닐까?

계엄령 선포로 수도가 격리된 듯 해도 민중은 화내지 않고 조용한 일상을 구가하는 장면은 정부에 대한 저항보다는 이기적인 일상을 그려낸 방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인지한 경정과 안과의사 부인이 지금보다 행복했을 때 만나고 싶은데 행복이 오다가 길을 잃은 모양이라는 말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금의 대한민국 정치인들은 '광의의 이익(행복)'을 위해 노력해 줄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