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이야기

칠칠이 최북을 만나다(호생관 최북을 읽고)

데조로 2010. 7. 10. 10:21

자기 고집이 있다는 것은

그 나름의 확실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좋게 말하면 개성이라고 할 수 있지만 트집을 잡자면 타협하기 어려운 인물이라는 평을 내놓는다.

최북은 동시대인이나 후인들이 개성보다는 기인쪽으로 평가하는 것을 보면 후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블로그에 댓글을 달다가 만난 최북은 꼭 한번 마주하고 싶은 예술가였다.

조선시대 영.정조시대의 화가로 드물게 직업으로 그림그리는 일을 했던 최북은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이었다.

처음엔 남종화풍의 그림을 그렸으나 한국의 고유한 색감을 살리는 진경산수화풍의 그림을 그리는, 남과 차별화되는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의 의지가 대단해 보이는 인물이었다.

가장으로서의 책무성 때문에 화가의 길을 걷지 못한 채 낮은 녹봉을 받으며 생활하는 아버지를 보며, 때로는 자신의 내면에 꿈틀거리는 예술적 기질을 어찌하지 못해 고민하는 청년의 눈을 통해 조선의 사회상을 그려보니 신분의 장벽이라는 것이 있을 뿐, 현재의 삶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숙식을 해결하는 것은 생활에서 그만큼 절대적일 수 밖에 없는.....

경제적으로 충족된 자야 걱정거리가 되지 못하지만 곤궁한 중생에겐 가장 큰 과업이니 고민을 가질 수 밖에......

 

[조어산수]

 

결국 화가의 길을 걷는 최북은 이름의 北자를 둘로 쪼개어 七七이, 그리고 毫生館 (붓으로 먹고 사는 사람) 으로 스스로를 칭했다.

이름이 알려지자 권세가들이 최북을 찾아와 산수화를 그려달라고 하자, 산만 그려놓고 물은 그려놓지 않아 왜 물이 없냐고 묻는 사람에게 산의 여백이 모두 물이라고 무안을 주기도 하고, 그리기 싫은 그림을 그려내라고 닦달하자 송곳으로 자신의 눈을 찔러버려 여생을 애꾸눈으로 살았던 최북이다.

어쩌면 기인의 행동이 너무 많이 부각되어 화가로서 제대로 된 획을 긋지 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봐도 생명력을 느낄 정도로 긴장감이 있다.

한 여인을 사모했지만 오해로 인해 병든 뒤에 해후하는 안타까움, 자신의 생이 궁핍해도 그림에서만큼은 자부심이 대단했던 이단아 최북.

그의 기질이 반 고흐같다는 사람들처럼 나도 고스란히 그의 괴팍한 성질이 사랑스러워 보인다.

오늘 같이 흐린 날은 조선의 최북을 마주하고 그와 도란도란 얘기나누고픈 날이다.

 

                                                                                  [초옥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