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니' 그들처럼 ......
장맛비가 잠시 그친 틈새가 덥기만 하다.
밤이 되어도 그 더운 기운은 쉬이 가시지 않아 여기저기 쏘다니다가 심야 영화를 봤다.
영화 '써니'
1968년생의 하춘화가 2010년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뜨기까지 자신의 역사를 드라마처럼 꾸민 영화로 학창시절에 뜻을 같이 한 친구들을 찾아 다시 뭉치는 과정을 재미나게 그렸다.
벌교에서 전학온 임나미와 칠공주 써니의 짱인 하춘화. 그리고 독서에 빠진 친구, 멋쟁이, 욕쟁이, 못난이, 도도하고 시크한 친구가 모여서 결성한 '써니'는 좌충우돌 학교생활에 다른 학교와의 세력다툼까지 실감나게 영화화했다.
축제를 준비하면서 뜻하지 않은 사고로 샅샅이 흩어지게 되었다가 나미가 우연히 병원에서 암환자인 춘화를 만나면서 그들의 끈끈한 우정이 되살아난다.
25년이 지난 후의 그들의 삶은 아픔이 밴, 그야말로 현대사회가 앓고 있는 병폐를 가득 안고 있었다.
평범하게 살고 있는 나미와 달리 술집작부, 가난한 주부, 바람둥이 남편을 둔 이중적인 모습의 아내, 보험 설계사, 그리고 죽음을 앞둔 친구, 축제 때 깨진 병조각에 얼굴을 긁힌 친구의 모습만 없다.
그러나 친구들을 한명 한명 찾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어두운 과거였지만 사랑스럽고 그리웠던 대상임에는 틀림없는 듯 보였다.
내게도 저와 유사한 그림이 있었을텐데
나는 선뜻 저들처럼 찾아나서기 어려운데
그들이 공유했던 문화가 오히려 부럽기까지 했다.
춘화는 죽으면서 각자의 친구들에게 어울리는 유산을 남겨주고 간다.
잘사는 친구들에게는 유머러스한 유언으로, 삶에 쪼들린 친구들에게는 그들의 굴곡을 메꿀 수 있는 금전적인 방법으로 돕고 떠나는 아름다운 영혼.
어렸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친구를 보듬고 위하는 것이 각박한 요즘엔 절실하게 느껴져서일까?
저예산의 영화, 평범한 영화가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 것을 보면 자못 씁쓸한 느낌이다.
한밤의 심야영화.
친구의 영정 앞에서 그들이 학창시절에 즐겼던 춤을 추면서 기쁜 마음으로 친구를 보내주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스트레스가 확 풀리면서 동질의 문화를 공유했다는 것만으로도 추억 여행을 다녀온 듯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