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금산 적대봉에 올라.
고흥은 내게 그리움의 대상지다.
문화적인 정체감으로 힘들었을 때, 마음의 파장이 가장 심했을 때 고스란히 내 모든 것을 품어준 곳이 고흥이라 다른 지역보다 훨씬 정겨웁다.
이번에 찾아간 곳은 얼마 전에 연륙된 거금도다.
녹동항과 소록도를 연결한 소록대교(1160m), 소록도와 거금도를 연결한 거금대교(2028m)가 연도되어 한층 접근성이 좋아졌고, 더구나 다리가 복층구조로 되어 있어 1층엔 사람과 이륜차가, 2층엔 자동차 전용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수월하게 당도할 수 있는 곳이 거금도다.
예전에는 적대봉에 오르는 길이 번거로웠으나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휭하니 둘러볼 수 있는 곳이 되었으니, 참 좋은 세상이다. ㅎㅎㅎ
정상 주변에서 본 거금대교
적대봉(592m)을 오르는 길은 경사가 심했다.
물론 바다를 끼고 있어서 등산하는 것이 적요롭지 않았고, 관망하기에 더없이 좋았으나 해빙기라 질척거린 산 기슭의 등산로는 위험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는 일.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금산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바람은 옷깃을 여밀 수 없을 정도로 살갗을 강타하는 파괴력을 보여주었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며, 안경에 가득찬 습기, 팍팍한 다리는 삼박자를 갖추어 자주 휴식을 취하게 만들었지만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산행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행복이다.
중턱만큼 올라 소원탑에 작은 소망도 살짝 내려놓고, 긴 호흡으로 남해 바다에 쏟아놓은 넋두리, 그리고 끊임없이 쏟아지는 수다에 동안의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시원하게 뻗은 남해 바다를 향해 선 소원탑
적대봉.
연도되기 전에 두어번 올랐던 장소였으나 그많은 관광객을 소화하기에는 아직 먼 그림이었다.
장흥의 천관산, 포두의 마복산 등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였으나 정상이란 표지석도, 오르고 내리는 곳도 정비되어 있지 않아 정복자들의 짜증은 극에 달했다.
남해바다를 조망하며 적대봉을 향해 가는 길
봉화대를 오르려고 하는 발길이 너무 많아 사고의 위험성이 높았다.
아쉬움을 안고 녹동항으로 향했다.
일행의 지인이 운영하는 횟집에 들러 싱싱한 자연산 광어회를 실컷 먹는 행운을 누렸다.
어디서 이런 자연산의 별미를 맛본단 말인가?
등산을 하고 난 후라 사람들이 치운 회 접시는 쌓여만 갔으나 물주는 괜찮다며 계속 공급을 해주니......
이 빚을 어떻게, 어디서 갚아야 할지.
잠에 취해 눈을 떠보니 순천이다.
오늘의 여정도 여전히 아름다운 여행길이었으니 고흥은 두고두고 내 추억의 갈림길에서 예쁜 모습으로 손 흔들어 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