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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의 진수를 가르쳐준 최명희를 찾아서

데조로 2014. 11. 19. 19:29

2014. 순천문협에서는 우리말을 가장 적재적소에 아름답게 썼다는 작가 최명희를 만나러 갔다.

전북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에 자리한 혼불문학관은 노적봉과 벼슬봉 산자락을 배경으로 가을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 풍경을 보고 작가 최명희는 어떻게 표현했을까?

그녀가 3일 밤낮으로 고심하여 표현했다는 의성어 소살소살처럼 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말로 빚어냈을지 모른다.

 

 

혼불의 배경지에 세워진 혼불문학관을 들러보고 나니 완독했던 혼불의 내용이 슬몃슬몃 얼굴을 내밀었다.

천추락만세향을 위해 노적봉과 벼슬봉의 산자락 기운을 잡아 묶어서 큰 못을 파고, 그 기맥을 가두어 찰랑찰랑 넘치게 하기 위해 2년에 걸쳐 만들었다는 청호저수지가 청암부인의 의지를 하늘에 전하려는 듯 솟대를 에두르고 있었다.

 

 

1930년대 남원의 양반촌인 매안이씨의 몰락해가는 한 양반가의 며느리 3대 이야기를 통해 당시의 힘겨웠던 삶을 그려낸 <혼불>은, 각종 세시풍속과 관혼상제를 세세하게 표현하고 있어 소설의 완성도뿐만 아니라 역사적 가치도 최고인 소설이다.

원고지 1만 2000장의 육필 원고로 17년만에 완성했다는 <혼불>은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뜷어 글씨를 새기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는 작가의 고백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녀가 얼마나 큰 각오로 소설에 임했는지, 얼마나 숭고한 정신으로 소설을 썼는지 짐작할만하다.

 

 

혼불문학관에는 소설 속 각종 장면이 디오라마(작은 공간 안에 어떤 대상을 설치해놓고 틈을 통해 볼 수 있게 한 입체 전시)로 전시되어 있어서 소설을 재해석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어 한 번 더 책을 읽는 듯한 착각도 경험할 수 있다.

 

달의 기운을 받고자 여인들이 흡월정 하는 모습, 최명희가 대숲에선 바람소리가 그칠 수 없음을 설명하는 것,  손주 강모에게 이불을 항상 깨끗하게 해야하는 이유를 말하는 것 등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가르침을 주는 대목이기도 하는데.......

 

 

 

매번 문학기행을 다녀오면 조바심이 생긴다.

작가의 뛰어난 업적에 자극받아 더 잘 써야 한다는 다짐뿐만 아니라  마음 속에 수많은 불길이 일어남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