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가난한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지혜를 배우러

데조로 2017. 2. 8. 11:02

방학 내내 방콕만 하는 남편을 꼬드겨 나들이를 갔다.

정치평론가가 되려는지 국정농단 사건 관련 매체를 섭렵하고, 종일 아이들 가르칠 교재 연구하느라 바쁜(?) 사람을 데려가려니 남편이 가보지 못한 곳, 가까운 곳으로 콧바람을 쐬러 가야해서, 선택된 곳이 구례 운조루였다.

운조루는 조선시대 양반가옥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으로 1776년 류이주에 의해 건립되었다.

운조루는 사랑채 당호로써 도연명의 시 귀거래사에서 따온 것으로 전해지며 타인능해의 글귀와 가난한 이웃들의 불편한 마음을 헤아린 주인의 배려를 볼 수 있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대표적인 사례였다.

특히, 운조루는 통나무를 깎아 만든 뒤주를 사랑채와 안채를 통하는 중문간에 두어 2가마니 반을 넣어 두고 배고픈 사람들이 언제든지 와서 뒤주를 열어 필요한 만큼 쌀을 가져가도록 하는  타인능해(他人能解)로 유명한 데 동학 농민사건이나 여순사건 그리고 6.25 전쟁통에도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집앞에는 작은 내가 흐르고 문칸방에는 하인이, 왼쪽이 사랑채, 사랑채와 안채를 이어수는 곳이 아이들 공부하는 곳, 오른쪽 ㄱ자 모양이 안채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아낙들은 도무지 바깥세상을 구경할 수 없어 부엌 위의 마루에 올라 밖을 내밀히  조망했다고 한다.

도연명의 시에서 따왔다는  사랑채 운조루

운조루 기둥의 자연목에 나타난 호랑이상

운조루 기둥의 자연목에 나타난 나비상

운조루 난간을 받치는 연꽃 문양은 운조루가 높은 집안이라는 곳을 보여주는 징표가 되기도 한다.

사랑채의 전체적인 모습으로 마루를 받치는 석조물이 팔각형이며, 문턱이 높은 것은 지체 높은 집안이라는 표징

안채의 모습

안채 마당에 있는 확독, 방아, 맷돌, 허드렛 물을 담는 석조물

섬돌 아래  놓인 세수 및 손발을 씻는 석조물

안채와 사랑채를 잇는 중문이 왼쪽으로 보인다.

사랑채와 안채를 은밀하게 연결해주는 통로가 오른쪽에 만들어져 있다.



1대 류이주부터 10대 류흥수까지의 가계도


굳이 역사를 연구하지 않더라도 운조루에 다녀오면 어떻게 살아야하고, 미래를 어떤 마인드로 살아야할지를 고민해보게 된다.

우리가 찾은 2017년 2월 7일은 방문객이 거의 없어서 그곳을 지키는 9대 종부와 10대 종손을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입장료 1000원을 받고 조금은 어렵게 생활하시는 후손들이 안쓰러워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지금은 문화재청에서 운조루유물전시관을 운조루에서 100m거리에 건립하여 더욱더 생생하게 시대상황이나 운조루를 지킨 사람들의 모범적인 삶을 소개하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운조루 탐방을 마치고 곰을 키우는 문수사에 들러 사색을 하다가 화개장터를 들르는 섬진강 드라이브를 마치고 오니 노곤하다. 오늘은 숙면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은 좋은 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