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그리고 순천만

낙안읍성과 순천만을 다녀와서

데조로 2005. 9. 12. 08:35

아침부터 안개비가 내렸다.

몇 달전부터 디데이로 잡아놓은 계획을 취소할 수 없어 등산 장비를 하고 나섰다.

그러나 산에 오르기는 무리여서 불가피하게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그것도 김 시인이 아는 지인들(서울에서 대형차를 대여하여 내려온 일당)과의 합류로 산이 아닌 이곳 순천 인근의 관광지를 여행하는 것으로....

 

첫번째 갔던 곳은 명도 다도원이었다.

조계산(선암사) 계곡에서 차를 재배하는 명인 신광수 님의 사랑방에서 그분의 철학과 녹차를 마시며 조계산의 정기를 호흡했다. 차 농사를 짓지만 본인은 눈금없는 저울의 판매방식(차 값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일단 차를 마셔보고 난 후 그에 걸맞은 돈을 후불하는 방식)을 채택한다며 조근조근한 말솜씨와 정갈한 놀림새를 보인 자태는 남자지만 사람들을 충분히 흥분시켰다.

아! 이렇게 사는 분들이 있어서 세상은 아름답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주문 생산을 하고 있는 그분의 차를 마시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닌데, 권위(?)있는 서울 손님들 덕에 우리도 염치없이 차를 한 꾸러미 얻어가지고 왔다. 

 

두번째 갔던 곳은 낙안읍성이었다.

낙안 읍성은 다른 민속촌과 다르게 그곳에 상주하는 농민들이 있는 고유의 토속촌이다.

자주 찾아가는 곳이지만 이번처럼 가을 꽃이 만발한 경우는 드물었다.

수세미와 호박은 담쟁이 넝쿨과 합류를 했는지 담을 넘어서 가까이 있는 나무를 칭칭 동여매고 놓아주지 않았고, 하늘 수박은 하얀 박꽃처럼 초가 지붕을 아름답게 덮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연발하게 했다.

특히 맨드라미와 나팔꽃의 강렬함은 여느 곳에서 보기 힘든 색채였다.

확실히 자연의 색은 가공하지 않아도 마음을 울리는 원류를 갖고 있어서 낙안 읍성을 돌아다니는 내내 마음이 따뜻했다. 

 

세번째 갔던 곳은 순천만이었다.

순천만은 내 고향이기도 하고, 내 시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근간이다.

행정 구역상으로는 전라남도 순천시와 고흥군, 여수시가 둘러싸여 있어서 고흥반도와 여수반도로 에워싸인 큰 만을 순천만이라고 부르는데 순천만은 농게, 칠게, 짱뚱어 등과 같은 각종 저서생물의 치어들과 기조류, 칠면초 등 각종 염생식물들이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는 생태환경의 보고라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 유일의 습지보호 구역으로 해양수산부에서 2003년 12월 31일에 지정한 곳이기도 하다.
대형 버스가 순천만의 갈대 숲으로 들어 갈 수가 없어서 우리 일행은 탐사선을 타고 순천만 곳곳을 누비기로 했다.

탐사선이 생태계를 파괴한다며 환경단체의 시위가 날로 거세지고 있어서 승선하는데 마음이 불편했지만 우리는 그냥 순천만을 더 많이 관조할 수 있다는 것에 무게중심을 실어 배를 타기로 했다.

아! 순천만은 하부를 갈색으로 그대로 드러내놓고, 생생한 자연 음악을 들려주고 있었다.

밀물 시기와 맞물려 순천만의 모습을 온전히 볼 수는 없었지만 탐사선을 타고 구석구석을 누볐다.

탐사선 주변으로 전어와 송어가 물살을 피해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선장은 물이 반, 고기가 반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 멘트에 우리는 모두 손을 내밀어 고기를 잡으려는 시늉을 하고....

붉은 칠면초를 처음 본 서울 손님들은 1년에 7번의 모습이 달라진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칠면초에 경이로움을 표했다. 또한 갯벌에 사는 염생식물이 있다는 것을 직접 보고 순천만이 새로운 신선함을 주었다며 모두들 좋아했다.

특히 높은(?) 지위를 갖는 사람들이 많은 탓에 탐사선으로 샅샅이 누빌 수 있는 기회를 가져서 여태 보지 못한 순천만의 숨은 뒷모습도 볼 수 있었다. 기분은 조금 씁쓸했지만.....

순천만에 오면 청둥오리탕과 짱뚱어탕의 맛은 꼭 음미해보고 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순천만이 고스란히 보이는 전망대 가든에서 물이 가득찬 순천만을 보면서 전어회에 짱뚱어탕을 먹으며 시를 읊고, 노래를 불렀다.

취기가 오른 어르신들은 흥에 겨워 남도의 자연을 찬미했고, 우리는 그런 환경에서 살고 있음에 새삼 감사를 느꼈다.

일몰을 보지 못하고 그들을 서울로 보내서 조금은 서운했지만 그들이 순천을 아름다운 고장으로, 다시 찾고 싶은 작은 도시로 가슴 속에 깊이깊이 새겨두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