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여자의 나들이
며칠 전에 송수권 시인과 화가, 작가 몇 사람이 만나서 저녁 식사를 하였다.
연세가 들어도 여전히 정열적인 삶을 이끌어가는 송수권 시인은 거친 입담과 다소 촌스러운 모습이었지만 그것 조차 아름다운 작가가 가져야하는 모습은 아닐런지....
세월이 가면 나도 제법 괜찮은 작가로 자리매김되어 있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진 시간이기도 했다.
특히 집필실인 '어초장'은 섬진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남 광양의 매화마을 근처에 있다며, 그 환상적인 배경을 사람들은 입모아 자랑하였다.
한 번 들러서 그곳의 자연을 섭취하고 싶었지만 희망사항으로 남겨두고 마음 속으로 그리다 돌아왔다.
오늘은 토요일.
아침부터 여름옷과 가을옷을 교체하고, 베란다의 화초를 정리하고, 청소를 하다보니 점심 시간이 다가왔다.
점심은 막내 딸의 생일초대가 있어서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을 패스트푸드점으로 갔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선물을 들고 하나 둘 모여들었고, 그들에게 점심(?)을 대접하고, 그들의 2차 문화인 노래방에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집에 와서는 그대로 쓰러졌다.
무리했던 모양이다.
허리가 아프기도 하고, 힘이 없어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한 참을 뒹굴었을까?
드라이브를 가자는 친구의 전화가 왔다.
아파서 나갈 수가 없다니 그녀는 '내가 너보다 더 아픈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1시간만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것 같은데....'라며 양해를 구하고 잠을 잤다.
자고 나니 몸이 조금 나아졌지만 컨디션은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절규처럼 뱉어내는 그녀의 말을 뒤로할 수 없어 챙겨서 순천만이 보이는 해룡 와온으로 떠났다.
와온으로 가는 길은 바다를 볼 수 있어 마음이 뒤숭숭한 날은 더없이 좋은 위로가 되는데, 마침
일몰을 보고 싶다는 그녀의 청이 있어서다.
아쉽게도 도착하니 해는 지고 구름사이로 연한 빛만 묻어 있었고, 바다는 썰물로 인해 진회색의 하체를 그대로 드러내놓고 있었다.
갯벌은 그대로 먹이감을 찾는 새와 아낙들의 수그린 노동으로 가족들을 하나 둘 보내고, 골을 따라 물은 말없이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막 피어난 억새의 몸놀림과 듬성듬성 자리를 보존한 코스모스의 모습도 가을의 전령사로 손색없이 전원적인 풍경을 더하고 있는 와온. 우리는 자연을 바라볼 뿐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바다가 잘 보이는 레스토랑으로 무작정 들어갔다.
처음 가보는 그곳은 온갖 야생화가 자연과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자랑하고 있었다.
바다를 배경으로 우리는 사진을 찍고, 이쁜 꽃은 디카에 모두모두 담아왔다.
그녀의 웃음이 다소 쓸쓸해 보였지만 우리는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분명 말하기 곤란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
일몰을 보여줬더라면 그녀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질 수도 있었을텐데...
[레스토랑 앞을 가득 메운 야생화]
와인에 고기 몇 조각을 먹고 나니 그제서야 조금씩 말을 하는 친구.....
어렵게 이야기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같이 갔던 둘은 오히려 반성을 해야했다.
그녀는 불혹을 넘겨도 여전히 가슴속에 남아있는 감성이 자신을 괴롭힌다며 우울해했고, 우리는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만약에 소녀적 감성이 아닌 속물적 근성으로 사람들을 만난다면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을 것인가?
모처럼 세 여자가 식구들의 저녁 식사를 내팽개치고(?) 무작정 떠난 드라이브와 은밀한 수다....
그녀가 그토록 갈구하는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이루어졌으면 .......
우울하게 떠났던 드라이브가 오히려 내게 활력을 주는 시간이 되었으니, 내일은 마른 가슴 털고 일어나 선하게 선하게 보는 연습을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