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실 나온 타인의 글
섭섭하다, 황정민
데조로
2005. 12. 2. 13:02
며칠 전 있었던 어떤 영화제에서 남자 주인공으로 열연을 했던 황정민은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훤칠한 외모와는 전혀 상관없고 오랜 고생 끝에 받은 이 수상에 대해서 웬만하면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내가 좋은 배우라고 생각한 것은 수상 소감 때문이었다. 소감 첫 머리에 스태프들이 잘 차려놓은 밥상만 받으면 되는 것이 배우라는 그 이야기가 퍽이나 진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섭섭한 건 어찌할 수 없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런 수상소감을 바랐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도 있겠으나 그 영화가 끌어다 쓴 중요한 현실이 결혼에 어려움을 겪는 농촌총각에 대한 이야기였고, 도시인들이 맘대로 상상하는 농촌총각의 '순박함'에 상당부분 기대고 있는 영화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쌀협상국회비준안이 통과되고 슬픔에 잠겨 있는 농민들과도 이 영광을 나누고 싶다"라는 그 한마디 정도 해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나의 이런 바람이 무리가 아니다 싶은 이유 중 하나는, 온갖 것, 특히 온갖 농산물이 개방되는 동안 그나마 잘 버텨준 것이 '스크린쿼터제'이기 때문이다. 농민들 몇 만 명이 모여 시위를 해도 관심 끌기는 어렵지만, 영화배우 몇 명만 나서서 발언을 해도 온 언론이 붙어주는 유리한 위치의 영화배우들에 대한 부러움일 수도 있겠다. '스크린쿼터제'의 취지는 단순히 자국의 영화를 지켜내는 차원을 넘어서 있다. 문화는 일반상품처럼 취급될 수 없다는 문화주권의 개념, 문화다양성의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고, 또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얼마 전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한 협약'이 유네스코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이 문화다양성 비준을 계기로 한국영화계는 힘을 얻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쌀은 어떤 존재인가? 한국영화의 역사가 100년 안팎이라면 한국 쌀의 역사는 수천 년이 축적된 존재다. 쌀은 단순히 식량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한국의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으니 그야말론 '문화주권'의 핵심인 것이다. 미국 주도의 일방적 문화침공을 막아내려는 것이 '스크린쿼터지키기' 운동이라면 쌀도 마찬가지다. 도시의 미끈한 남녀들의 이야기가 더이상 재미없어진 영화판에서 농촌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늘어나고 있다. 소재가 다양해졌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또 저렇게라도 주목해주지 않으면 버젓이 존재하고 있어도 잊힌 존재로 취급당하는 농촌을 그나마 각인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황정민이라는 배우의 한마디가 내내 아쉽고 섭섭할 정도로 2005년 대한민국 '농촌의 운명'은 안타깝고도 안타깝다. |
2005년 12월 2일 오마이뉴스에서 퍼옴(정미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