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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회운동은 위기인가?

데조로 2006. 3. 24. 13:31
▲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개최된 한국사회포럼2006 '한국의 사회운동은 위기인가' 특별토론회.
ⓒ 오마이뉴스 안홍기

1980∼90년대 민주화와 개혁을 이끌었던 한국 사회운동, 과연 위기를 맞고 있는가. 그럼 무엇이 위기이고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진보진영의 소통과 연대, 한국 사회의 대안 모색을 위해 지난 2002년부터 해마다 열려온 한국사회포럼. 그 다섯 번째 행사가 23일 오후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한국의 사회운동은 위기인가'라는 주제로 시작했다.

문화연대·민교협·전교조·민주노총·민중연대·참여연대·한국노총·환경운동연합·한국여성단체연합 등 한국의 진보진영 대표주자들이 주관한 이번 한국사회포럼2006에는 60여개 단체들이 시민사회단체들이 참가해 25개 주제를 놓고 논쟁을 벌인다.

이날 오후 1시부터 시작된 '한국의 사회운동은 위기인가' 토론회에는 김어진 다함께 활동가,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정대연 전국민중연대 정책위원장, 지금종 문화연대 사무총장, 진중권 시사평론가, 허성우 대전여민회 공동대표, 홍석만 참세상 사무처장 등이 진보세력 내부 '위기론'의 실체를 진단하고 이를 극복할 다양한 방안을 내놨다.

진중권 "진보세력, 문자문화의 낡은 패러다임에 서 있다"

특히 "현재 진보운동세력의 패러다임이 이미 낡았다"며 새로운 방식의 운동을 펼쳐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주목을 받았다. 시사평론가 진중권씨는 지금 상황을 '진보의 위기'로 규정한 뒤 그 원인을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서 찾았다.

사회소통의 주요수단이 문자에서 영상으로 옮겨지면서, 역사주의 의식 약화를 불러왔다는 것. 진씨는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선형적인 시간관이 붕괴되면서 텔로스, 즉 역사의 최종목표가 사라지고 운동에 수반됐던 준종교적 열정도 약해져 운동이 방향감각을 상실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진보운동세력을 향해 '문자문화의 낡은 패러다임 위에 서 있다"고 일갈했다. 따라서 정보사회 패러다임이 진보운동내 NL(민족해방) 계열의 농경사회 정서는 물론 PD(민중민주) 계열의 산업사회 정서마저 오래 전에 낡은 것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

진씨는 "요즘 학생들은 상형문자를 쓰는 등 이미지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이미지와 텍스트를 섞어 쓰는데 능숙하다"며 "그러나 운동권에서 돌리는 전단이나 쓰는 말을 들어보면 아직도 구태의연하게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쉽게 말해 자신들이 비판하고 있는 사회보다 진보세력이 더 낙후돼 있다는 것이다. 진씨는 "종종 '진보야말로 수구적'이라는 비난이 나오는 것은 그런 낙후성 때문"이라며 "새로운 진보를 위해서는 사회주체의 의식구조 전체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회'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홍석만 "시민운동 순수성 찾자, 신자유주의와 완전 결별해야"

지금종 문화연대 사무총장도 "사회 각 부문에서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움직임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며 현재 한국사회운동이 맞은 위기를 진단했다.

지 사무총장은 "기존 사회운동이 엄숙한 서사구조를 갖고 있다면, 요즘 사람들의 표현방식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며 "말과 문자를 중심으로 한 운동에서 패러디, 그림, 사진, 노래와 같은 새로운 형식의 표현이 생겨나고 있고 집회에서도 이런 것을 추구하는 흐름이 강하다"고 말했다.

사회주체와 패러다임이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사회운동 진영이 그런 것을 잘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지 사무총장은 "이 문제에 대해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시민운동이 순수성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홍석만 참세상 사무처장은 신자유주의와 완전히 결별하고 비정부기구로서 독립성을 찾는 게 우선이라는 진단을 내놨다.

홍석만 사무처장은 "김대중 정권부터 국가운영에 참여하는 적극적 역할을 자임한 자유주의 NGO(비정부기구)들은 참여정부에서는 대규모로 '참여'하게 됐다"며 "이런 상황에서 한국 NGO을 'Non Governmental Organization'(비정부기구)이 아니라 'Neo Governmental Organization'(신정부기구)로 봐야 한다는 비판도 설득력이 있다"고 밝혔다.

홍 처장은 지난 2004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의 NGO 역할을 강하게 비판했다. 신자유주의 폐해에 저항해야 할 시민운동세력이 신자유주의 정권을 적극 옹호하기 위해 거리로 뛰쳐나갔고, 여론의 힘을 모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다수당으로 만드는데 동원됐다는 것.

그는 "이제 시민운동은 사회지배체제의 작동 메커니즘 하나로 자리잡게 됐다"면서 "지배세력으로 편입될 것인가, 독립적 사회운동으로 남을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시민운동이 독립적인 사회운동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신자유주의 전략기조를 철회하고 이를 비판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며 "그렇게 하지 않고 '양극화 해소, 사회통합'을 말하는 것은 대중의 불만과 저항을 적절한 수준에서 묶어두는 관리형 NGO의 역할에 불과하며, 궁극적으로 지배질서에 포섭됨을 뜻한다"고 비판했다.

정대연 "민중-시민운동 포괄하는 상설 협의기구 만들자"

정대연 전국민중연대 정책위원장은 사회운동이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으로 나뉘어 투쟁동력을 한 곳으로 모으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한 뒤 진보적 민중운동과 노동운동, 시민운동 등 각 운동세력에 대해 각각 쓴소리를 던졌다.

"진보적 민중운동은 지향과 목표는 있으나 빠르게 현실 속에 실현할 능력이 약해 급진적 주장을 여과없이 내놔 대중 지지를 얻는데 실패하고 있고, 노동운동은 사회운동 전략이 취약해 이익집단으로 매도당하거나 대중들로부터 경원시되고 있다. 시민운동은 스스로 탈이념화하여 자유주의적 의제에 안주, 구체적 의제에 대한 대응능력은 높으나 일관된 전략이 없다."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살해사건 투쟁, 파병반대투쟁, 탄핵무효 투쟁 등을 한국사회를 움직인 진보진영의 주요 투쟁으로 평가한 정 위원장은 이를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이 결합한 전형'으로 평가하고 "민중운동의 대중적 동력과 전투성, 시민운동의 정책 및 여론형성 능력 등이 결합했을 때 위력을 잘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민중운동과 시민운동 전체를 포괄하는 상설적 정책협의 구조가 필요하다"며 그같은 소통구조로 '한국사회운동 정책회의' 구성을 제안했다. 이를 통해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연대를 강화하고 사회양극화, 한미동맹 재편 등 주요 의제에 체계적으로 대응하자는 것이다.

 

* 오마이뉴스에서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