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레지가 만개한 조계산
친구와 함께 조계산을 올랐다.
발 딛으면 금방 다녀오는 곳에 조계산이 위치한 까닭에 수도 없이 갔지만 심란한 마음을 안고 가는 이번의 여행은 많은 것을 고뇌하게 만들었다.
봄의 전령사 역할을 한 매화며 벚꽃이 제법 꽃망울을 자랑할줄 알았는데 아뿔싸! 그러기는 너무 이른 탓인지 잊고 있었던 얼레지만 무더기로 피어있어 굴목재를 오르는데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슬픈 전설을 지닌 채 여섯 날개를 제비모양으로 하고 천상으로 날아가려는 폼새가 누군가의 마음을 닮은 것 같아 슬픔이 배가되었다.
뜻밖에 만난 얼레지 탓에 두 번째 시집에 게재된 [얼레지]란 시를 외우며 조계산을 올랐다.
아름다운 아치형의 승선교가 고스란히 물에 비쳐 장관을 이루고 있는 다리 아래에는 사진 작가들이 좋은 작품을 찍기 위해 도열해 있었다.
선암사의 첫 번째 관문인 강선루가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삼인당 주변에는 주말이라 연인들이 두 손을 맞잡고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풍경이 많았다.
그래서 사진 찍는데 애를 먹었다.
선암사를 지나 조계산을 오르는 도중에 만나게 되는 버들 강아지와 편백림
굴목재 쯤에 오르면 정말 배가 고프다.
물론 온갖 나물로 입맛을 유혹하는 보리밥 생각이 앞질러 그럴 수도 있지만 굴목재에 다다르기 전에 가파른 길이 있어서 사람들의 힘을 빼놓기 때문이다.
사연 많은 굴목재에서 12분 여를 아래로 내려가면 두 군데의 보리밥 집에서 나는 그 맛내나는 풍경을 누가 지나칠 수 있을까?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동동주에 파전을 마주하고 한 두잔 들이키다보면 웰빙이 따로 없다.
더구나 산나물을 고추장에 비벼 벅는 비빔밥으로 속을 달래고 나면 그 어떤 부르조아도 부럽지 않다.
와상에 드러누워 이런저런 사색을 즐기면 오죽 좋겠는가?
그러나 주말이라 밀려드는 인파때문에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조금 지나면 얼레지를 대신해서 복사꽃과 벚꽃이 그 자리를 메워주겠지만 3월의 끄트머리에서 마주한 조계산은 얼레지의 슬픈 사랑으로 입모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