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곡성-월등-낙안) 여행길
토요일 오후 지인들과 함께 복사꽃을 보러갔다.
우중충한 날씨에 빗방울이 한 두 방울 떨어지고 있었지만 그것이 앞 길을 막지는 못했다.
영산홍이 빠알갛게 물들어간다해도 님의 얼굴 닮은 복사꽃을 보지 못하고 이 봄을 보낸다면 어떤 님의 시처럼 나도 같이 시들어버릴 것 같아서......
철쭉이 다 피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곡성 기차마을로 달렸다.
기차가 지나는 길목에 철쭉이 흐드러지게 핀 멋있는 풍광을 자랑하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아무 의심없이.....
그러나 철로 주변에 불타고 있어야 할 철쭉은 아직 꽃망울만 맺혀있고, 기차는 그런 우리를 놀리는 듯 기적을 울리며 옆을 스쳐지나간다.
엑셀을 밟으며 기차 보다 앞서서 갔다.
기차역에 먼저 도착해서 들어오는 기차를 볼 요량으로.....
기차마을을 테마로 엮어 성공하고 있는 곡성군의 기차역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기차가 곡성역으로 진입하고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두 주인공 사진이 바람을 안고 기차역을 지키고 있었다.
느림의 미학이라고 했던가?
연인이나 가족들이 도란도란 나누며 가는 철로 이야기.....
곡성 태안사 길의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따라 순천시 월등면에 다다랐다.
복사꽃이 아직 기다리고 있어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아! 연분홍 복사꽃보다 더 붉게 타는 저 개복숭아 꽃....
파아란 보리밭 위로 춤을 추는 복사꽃
여인네의 속옷같기도 하고, 수줍어서 볼그레한 님의 얼굴 같기도 하고....
[사랑과 야망]에서 은환이가 굳건히 지키는 과수원집 진입로.
화면에서는 진한 개나리 꽃과 진달래가 즐비하게 늘어섰던 곳. 그것은 모두 조화였고, 위로 은은하게 화면을 채운 것이 복사꽃이었으니.....
멀리서 애틋한 마음을 짊어지고 태수가 금방이라도 과수원으로 올라올 것 같았다.
태수와 은환이의 사랑이 머물던 곳.
월등의 복사골 꼭대기에 마련된 세트가 주변의 환경과 어울려 무척 운치있었다.
은환이의 과수원집에서 내려다 본 복사골
사랑하는 사람과 손 마주 잡고 종일토록 걷고 싶은 마음이 .....
빗속에서 국수로 대충 늦은 점심을 먹고 낙안 민속마을을 찾았다.
연못은 서민들의 애환을 알고 있는 듯 회색 하늘을 가득 담고 있었다.
은행나무 앞 집이 바로 김 시인이 글을 쓰기 위해 마련한 곳이다.
따뜻한 황토방이 선사한 그 황홀함에 잠시 빠져 있어 행복했다.
장군이 적을 물리치기 위해 노심초사했을 곳에 올라서 주변을 살펴보니
온통 푸르른 색에 오히려 내가 주눅이 들고 말았다.
지게에 심어져 있는 유채꽃이 평화로운 마을의 인심을 가득 싣고 있어서 길손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담쟁이가 멋있게 어우러진 고샅을 따라 민속마을을 거닐다보면 우리 부모님들의 삶을 조금은 엿볼 수 있으리라.
늦은 시간에 낙안민속마을을 빠져나오면서 동동주나 한 잔 하고 나올걸하는 아쉬움이 일었다.
그러나 이미 늦어버린 일.
김시인이 예술가들의 쉼터로 그 집을 마련했다는 이야기에 나도 가끔 이용해야겠다고 선언 아닌 선언을 해서 다음엔 마음 놓고 그 집을 드나들 수 있으리라.
날씨도 궂은데 마다하지 않고 여행 길라잡이 역할을 하며 운전을 한 어떤 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더불어 더 좋은 글로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벌써 초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