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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이야기방

가르친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 입니다.

데조로 2009. 6. 15. 21:58

선배들의 권유로 불량서클에 가입한 아이들의 부모를 내교시켰다.

요즘의 불량서클은 상상을 초월한 무지막지한 조직이다.

우리 반에도 한 놈이 연루되어 있어서 아빠가 학교에 오셨다.

부모의 이혼으로 아빠와 산 그 아이는 인물이 출중하다.

거기에 키도 크고 몸집도 좋아서 담임이 되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녀석이었다.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기 위해서 정말 신경을 많이 썼던 녀석.

엄마가 지고 간 빚을 갚다갚다 못 갚아서 파산신고를 하고 그나마 풀칠이라도 한 기초생활수급자.

심성이 괜찮은 아이다.

내가 무거운 것을 들고가면 "선생님! 이리 주세요"라며 먼저 들고 총총히 앞장 서 가던 녀석.

아버지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담임인 나도 부끄럽기만 했다.

학생부장님의 경위 설명과 학부모들과의 일대일 면담, 그리고 대책에 대해 논의를 한 학부모들은 여기저기서 눈물을 닦고 계셨다.

부모님이 무슨 죄인가?

부모님이 어째서 저렇게 당당하지 못하고 풀이 죽어 있는가?

우리 반 녀석의 아빠는 시간이 지나도 학교를 쉬이 떠나지 못하고 운동장을 쳐다보며 깊은 시름에 잠겨 있었다.

 

 

퇴근하고, 전교조에서 주관하는 학급운영 연수에 갔다.

아이들을 교사입장보다는 그들의 입장에서 상황을 재해석해야한다는 강사의 말씀에 뜨끔했다.

어느 날 퍼머를 하고 온 여학생에게

"너는 행복하니?"

"예"

"네가 행복하다니 선생님도 행복하다"했더니 종례 후 찾아와서는

"선생님! 머리 풀고 올게요"

"아니, 행복하다면서 왜 그런 생각을 했어?"

"에이, 선생님. 선생님의 진심을 말해주세요."

"네가 행복하면 나는 좋은데.... 주변의 사람들이 너로인해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깊은 생각을 해줬으면 해"라고 답했다는 선생님.

 

나는 어떠했는가?

 "그렇게 퍼머가 하고 싶던? 방학중에나 한번 해보지.....부모님이 퍼머했는데 아무 말씀도 안 하시던?...."

"사복차림의 학교행사면 그나마 봐줄만한데 교복엔 안된다. 당장 풀고와라 잉~~~"이라며 아이들을 벼랑으로 몰고갔다.

숨고싶은 마음이 부끄러워 입안에 이슬만 가득 채웠다.

내일은 교실 문을 열고 "얘들아! 오늘 우리 행복하게 시작하자!!!"라며 에너지를 팍팍 주면서 사랑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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