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은 광목 커튼에 매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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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잔의 여유

마음이 이쁜 사람 2

데조로 2005. 11. 14. 14:00

 

노란 은행잎이 도열하여 반기는 순천은 시목이 은행나무라 가는 곳마다 노란 물결로 장사진이다. 도로 위에서 풍장을 기다리는 낙엽을 보면 멋있다는 표현보다는 숭고해 보인다는 것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는 가을.
그 가을의 끄트머리를 향해가는 며칠 전.
사이버 회원이 운영하는 옷 수선집엘 갔다.
몇 번 그 샵을 찾으러 갔었지만 간판이 없는 까닭에 헛수고로 그치고, 전화를 해서 겨우 찾아낸 수선집.
코흘리개 아이들의 문방구 옆에 붙은 허름한 그녀의 공간.
주차 공간이 없어서 파킹할 공간을 찾으려 두리번 거리다 열린 문 틈새로 주인을 직감하는 얼굴이 보였다.
짧은 시간에 눈 인사를 주고 받으며, 아.... 저 사람이 '000'일거야라는 생각을 하며 문을 열었다.
마땅히 처음 방문한 가게에 가져갈 것이 없어 롤케잌과 살이 쪄서 입지 못했던 옷을 챙겨 그녀 가게에 들어갔는데, 여기저기 자투리 천이 삐죽빼죽 나와 있고, 그것들을 정리하느라 일요일까지 나와서 일을 하고 있었다.
아니, 일요일에 간다는 내 전화에 바쁜 시간을 쪼개서 그곳을 지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다리에 약간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이다.
전화 통화를 몇 번했고,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은 것이 모두인 우리지만 오래된 지인처럼 이야기를 했고, 그녀는 순천만을 드라이브 시켜주라는 작은 소망도 얘기했다.

여기저기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있었다.
작지만 옹골차게 꾸며진 그녀의 작업실을 보니 바쁘게 열심히 살아가는 그녀의 손때를 볼 수 있고, 그녀의 순박한 일상이 금방 쏟아져 나올 만큼 겹겹이 드리워진 그림자도 감지되었다.

옷을 맡겨두고 1주일 후에 그녀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수선을 다 해놨으니 방문해 달라는....
퇴근을 하고 다소 먼 거리인 그녀의 작업실로 갔더니 여전히 고객과 친절한 얘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작은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본인보다 더한 장애를 갖고 있는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과 지금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며 살아가고 있는 그녀는 강원도가 고향이라고 했다.
말도 차근차근 정감있게 할뿐만 아니라 사이버 공간에 내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써놨더니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는 문자도 줄만큼 세심한 마음을 가진 아름다운 그녀.

그녀가 수선해 둔 옷을 보니, 역시 솜씨는 최고였다.
그녀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저녁 시간을 같이하고 싶어도 언제나 갈증처럼 느껴진 내 일과가 그걸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게 이쁜 뭔가를 해주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서 그걸 실행하지 못했다며 결코 수선비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입씨름을 한참이나 했을까?
염치없지만 그녀의 마음을 받기로 했다.
대신 그녀의 화려한(?) 드라이브를 책임지고, 후일을 약속하는 모종의 거래(?)를 뒤로하고 가게를 나오면서 오랜만에 만난 마음이 이쁜 사람이 내게 또 한 사람 주어졌다는 것이 든든했다.

어려운 살림이지만 마음을 전하려고 노력하는 그녀의 마음이 오래오래 내 가슴속에 남아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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