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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방

거대한 뿌리를 읽고

데조로 2006. 9. 6. 14:57
 

김중미의 [거대한 뿌리]를 읽고


대학 다니면서 잠시 운동권에 몸담을 때 김수영은 우리들의 꿈을 키우는 시인으로 존경받는 문학가였다. 저녁 내내 시 ‘풀’을 외우며 가슴 저리도록 일상을 비판하고, 우리들의 삶을 개혁(?)해보자며 두 손을 불끈 쥐기도 했는데....... 우연하게 김중미의 소설 [거대한 뿌리]에서 김수영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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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나는 광화문

네거리 시구문의 진창을 연상하고 인환네

처갓집 옆의 지금은 매립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파라다이스처럼 생각한다.


버드 비숍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비숍여사와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네에미 씹이다. 통일도 중립도 개좆이다

은밀도 심오도 학구도 체면도 인습도 치안국

으로 가라. 동양척식회사, 일본영사관, 대한민국관사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나 빨아라. 그러나

요강, 망건, 장죽, 종묘상,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

이 무적한 반동이 좋다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 제3인도교의 물 속에 박은 철근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기괴영화의 맘모스를 연상시키는

까치도 까마귀도 응접을 못하는 시꺼먼 가지를 가진

나도 감히 예상을 못하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현실 비판의식과 저항정신을 바탕으로 씌여진 그의 시 ‘거대한 뿌리’ 중 3연-6연의 내용이다.

우리 것에 대한 자각과 외양보다는 내면을, 전통으로의 회귀 등이 비축된 이 시에 김중미는 감화되었을까?

                                            

 

청소년 동화인 [괭이부리말 아이들]로 친숙한 그의 내면에는 처절한 삶이 고여 있는 듯 보인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하면 쉬이 드러내지 못한 면면이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는 [거대한 뿌리]는 작중 인물들의 미래가 빤히 보인다. 그러나 결코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절절한 삶의 편린들....


과거 기지촌이 남긴 혼혈 문제와 이주노동자의 이야기를 접목시켜 우리사회의 부끄러운 이중적 자화상을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은 얼마 전에 우리 독서 모임에서 다룬 [말하라, 찬드라여]처럼 이주 노동자의 삶이 군데군데 다루어진 작품이다.

살다보면 의식을 야금야금 침투해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미군기지 이전 반대, 입양 환영, 미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동경 등.... 개인의 의식에 큰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는 것이 사회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건강한 사회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새삼 대두시킨다.


동두천에서 14살까지 살았던 정원이는 가공된 인물이 아니라 바로 김중미 작가이다.

동두천에서의 시기가 자아정체감이 형성되던 때와 맞물려 그대로 자신의 성장에 수혈되어 지금의 생활을 지배한다. 그래서 M동에서 공부방을 열고, 어려운 이웃을 살피는 따뜻한 품성을 지니게 된 정원이.

그런 정원이 조차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을 고발하는 두 장면이 책을 읽고 난 후 오래도록 오버랩되어 뇌리에 박힌다.

그 하나는 M동에서 만난 정아다. 어느 날 폭력적인 아버지와 그 폭력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어머니를 가진 정아가 이주 노동자인 네팔인 자히드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선생님 정원에게 “미래도 없는 이주노동자라니요? 그럼 난 뭔데요? 나는 미래가 있어요? 선생님 친구처럼 이주노동자를 돕는 활동가는 괜찮고, 이주노동자를 사랑하고 그 사람의 아이를 갖는 건 안 된다는 게 말이 돼요? 도대체 뭐가 달라요?"라며 항변하는 모습과 유년기의 첫사랑 재민이가 정원에게 ”나는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싶어. 도대체 튀기가 뭐 어쨌다는 거야? 물건은 미제라면 사족을 못 쓰면서, 왜 우리 같은 애들은 싫어해? 나도 반쪽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미제야. 그리고 나머지 반은 너희들하고 똑같다고. 도대체 왜 우리가 너희들한테 무시를 당해야 하냐고, 왜?"라는 혼혈인 조재민의 절규는 바로 옆에서 듣는 것처럼 소름이 끼쳤다. 어쩌면 독자인 내 맘을 들켜버려 더 옥시글거린 마음의 파동을 겪었는지 모른다.


유년기 때 재민의 손을 잡고 다니던 고샅길, 친구 해자와 수다를 떨던 판자 집, 수많은 인생의 곡절을 경험한 그들의 부모, 돈의 노예가 되어 버거운 시선을 피해 간 윤희 언니, 입양 간 경숙이 등, 어느 것 하나 놓고 싶지 않은 정원이의 산물이다. 그 산물의 인생 곡선을 담담히 그리고 있는 [거대한 뿌리]는 체험이 아니면 결코 그릴 수 없는 탄탄한 구성과 세밀한 터치가 단연 돋보이는 사회고발성이 강한 소설이다. 그러나 입양 간 경숙이의 후기가 단 몇 줄이라도 서술되어 그 고발성을 배가시켰다면 하는 아쉬움도 남고, 여전히 외로움으로 남은 재민이의 해피 엔딩을 바라는 것은 무리일까?


지금 내가 딛고 선 이 땅이 비록 험하고 힘들지라도 그 뿌리가 거대하다면 쉬이 뽑히지 않을 것이다.  키가 크나 작으나 하늘에 닿지 않는다는 할머니의 가르침대로 외부의 잣대로 타인을 평가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동두천은 사람들을 떠나보내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고향에 대한 아련한 회상을 대변하는 말일 것이다.

오늘은 내가 동두천의 정원이가 되어 재민이와 즐거운 한 때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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