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은 광목 커튼에 매달려

나의 生은 어떤 빛깔일까? (에밀 아자르의 작품)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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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生은 어떤 빛깔일까? (에밀 아자르의 작품)

데조로 2006. 12. 2. 11:58
 

자기 앞의 生(La Vie devant soi)

에밀 아자르, 문학동네, 2003

 

 

 生은 광의의 의미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마다 느끼는 색깔이 다양하여 무어라고 단정하기는 참 어렵다. 다만 우리들이 生 앞에서 숙연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은 대 자연의 순리이기 때문은 아닐런지....


다른 책을 읽으려고 도서관 목록을 뒤지다가 어떤 님이 감명 깊게 읽었다는 로맹 가리의 책이 눈에 띄었다.

연한 살색 표지에 ‘자기 앞의 生’이라고 누워있는 글자체가 다소 무겁게 느껴지긴 했지만 정작 본명인 로맹 가리보다는 에밀 아자르로 더 빛나는 작가에게 숨은 속뜻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랄까?

로맹 가리가 다른 사람으로 살고 싶은 욕구와 다르게 평가받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철저하게 에밀 아자르로 살았다고 하는데, 충분히 공감 가는 이야기다.


로맹 가리는 1914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프랑스인(유태계)으로 산 작가다.

1956년 로맹 가리라는 이름으로 출간한 [하늘의 뿌리]로 콩쿠르 상을 수상했고, 1975년에는 에밀 아자르란 이름으로 두 번째 콩쿠르 상을 받는 초유의 사건을 기록한다. 그 책이 바로 [자기 앞의 生]이다.

유년 시절에 겪은 낯선 환경과 외로운 성장기는 로맹 가리에게 정체성이란 화두를 남겼다. 체험의 물에 발을 담가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인간의 처절한 고독과 사회 문제, 그리고 거기에서 잉태된 불평등, 전쟁, 고아, 편견 등은 로맹 가리의 소설을 이끄는 주된 테마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자기 앞의 生]은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열네 살 소년 모모(모하메드)가 창녀의 경력을 갖고 있는 유태인 로자 아줌마와 살면서 느끼는 성장 소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에 20명 이상의 손님을 받는 창녀 아내에게 질투를 느껴 살해하고 마는 정신병을 가진 아버지를 둔 모모의 슬픈 가족력에 책장을 느낄 때마다 일어서는 조마조마한 로자 아줌마의 일상이 끝까지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마력을 갖고 있었다.

유태인 수용소에서의 끔찍한 기억이 무서워 경찰을 두려워한 뚱뚱한 로자 아줌마는 ‘창녀들은 아이들을 돌 볼 수 없다’는 법규를 위반하며 위태롭게 창녀의 아이들을 키우지만 언제 닥칠지 모르는 불안과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창녀들에게서 매달 조달되어야 하는 금액이 입금되지 않아도 아이들을 돌보는 마음 따뜻한 로자 아줌마. 모모가 떠날 것을 염려하여 모모의 나이를 낮춰서 알려주는 로자 아줌마. 그런 로자 아줌마를 가슴 깊이 좋아하는 어린 모모. 어느 날 하밀 할아버지가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말을 들려줘도 무심코 들었던 모모에게 로자 아줌마의 뇌혈증은 마음의 불씨를 당기는 사건이며, 진정한 사랑을 알아가는 원류가 된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품고 있는 사랑은 많다고 했던가?

로자 아줌마의 생계가 위협받자 여장 남자인 롤라 아줌마의 경제적인 지원, 모모에게 정신적인 위안을 주는 금발의 미녀 나딘 그리고 카츠 선생님과 하밀 할아버지 등 사랑의 모태를 보여준 아름다운 사람들을 [자기 앞의 生]에서는 많이 만날 수 있다.

병원에 가면 조금이나마 고통을 줄일 수 있지만 유태인 수용소에서의 경험이 오래도록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든 까닭에 홀로 죽어가기를 소망하는 로자 아줌마의 희망에 따라 한 밤중에 그 육중한 로자 아줌마를 모시고 둘 만의 아지트인 지하실로 간 모모. 죽어가는 로자 아줌마에게 향수를 뿌리고, 그녀가 그토록 좋아한 색조 화장을 손수 해주며 꺼져가는 생명을 보이지 않으려는 모모의 그 아름다운 사랑이 소설의 결말 부분을 이끈 힘 있는 소설이었다.


죽음은 한 인간에게 있어서 자연의 법칙과도 같다.

썩은 시체 냄새가 진동한 폐쇄된 공간에서도 사랑으로 나란히 누울 수 있는 모모의 마음에 사랑은 간절한 그리움이며 욕망인지 모른다. 모모에게 있어 사랑은 탈출구가 없는 아득한 신기루는 아니었을까?

고백하건데 나는 사랑을 믿지 않았지만 그 사랑을 갖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던 기억이 있다. 왜? 나는?

끝없이 이어지는 회의에 스스로 답을 내리지 못하고, 보내야했던 그 방황의 시절.

모모를 보면서 나의 작은 옛 추억이 오버럽 되었다가 슬프고 아름답게 맺어지는 스토리에 위안이 되었으니......


거의 1주일을 소모하면서 [자기 앞의 生]을 읽었다.

게으름과 바쁘다는 핑계를 들 수 있겠으나 어쩌면 나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아 회피하지는 않았는지.....

가만히 책을 덮고 모모의 生이 깃털처럼 가볍기를 바라며 더불어 사랑만큼은 온 마음에 흥건히 고이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