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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두 번 결혼할 수 있을까?(박현욱의 작품)

데조로 2006. 12. 7. 10:51
 

아내가 결혼했다......왜?


                                                                                                      박현욱, 문이당, 2006


아내가 결혼했다?

제목부터 묘한 뉘앙스가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사랑(인생)이 축구 경기와 같다는 전제를 가지고 이어진 스토리는 요즘의 ‘사랑’이란 단어에 일침을 가하듯 공격적이다.

[아내가 결혼했다]가 제 2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아마 누구도 시도하지 않는 가상의, 다소 혁명적인(?) 내용을 썼기 때문은 아닐까?

소설을 읽으면서 호흡이 거칠어지듯 가속도가 붙어 쉬이 멈출 수 없었다.


사랑은 리얼한 것이고, 필링이고, 터치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겠지만 그 사랑의 속물적 내용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사랑 없이도 섹스가 가능하다는 여자와 아직은 지순한 사랑을 꿈꾸는 남자의 사랑.

만남부터 어긋난 것인 줄 모른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결혼을 꿈꾼다. 그러나 주인공 인아는 결혼도 구속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가치관을 갖고 있는 여성이라 사랑이 고통일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수평선 사랑. 금슬 좋게 살아가는 부부를 칭송하고 부러워하는 것은 그만큼 그렇게 살기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인아는 늘 자유로운 영혼이다.

메리 맥그리거의 노래 [Tom Between Two Lovers]에 이런 구절이 있다.

“다른 남자가 있어요. 나는 그를 사랑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을 덜 사랑한다는 말은 아니랍니다.

그 남자도 자신이 날 소유하지 못한다는 걸, 앞으로도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맘속엔 단지 그 남자만이 채울 수 있는 빈자리가 있어요.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내가 바보처럼 느껴져요.

두 사람 모두를 사랑하는 것은 롤을 깨는 거잖아요.

내게 다른 남자가 있다고 해서 나를 얻지 못했다 생각지 말아요.

당신은 내 첫 번째 진실한 사랑이에요.

당신을 사랑한다고 했던 그 모든 말들은 모두 진실이에요.

어느 누구도 내가 당신에게 드렸던 부분을 차지할 수는 없어요.

당신이 나를 떠난다 해도 당신을 비난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당신에게 떠나지 말아 달라고 하고 싶어요.“ 


두 사람의 애정 전선을 미리 감지한 노래라고 부를 정도로 흡사한 내용이다.

프로그래머인 아내가 경주로 떠나면서 새로운 연인이 등장하고, 그 연인과 결혼을 하겠다는 인아.

그런 인아의 사랑관에 브레이크를 걸며 의식 전환을 요구하지만 인아의 마음은 부동적이다.

두 사람을 다 사랑한 까닭에 한 사람만을 버릴 수 없어 이혼도 하지 않은 채 또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아내. 일처다부제의 민족이 갖고 있는 메리트를 부각시키고, 늘 새로운 사랑을 열망하는 아내에게 수없이 일반적인 가치와 의식을 심으려 노력하지만 닻을 내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항해만 하는 아내 인아.


귄터 그라스의 ‘내 공은 한 쪽이 찌그러졌다. 어렸을 적부터 난 누르고 또 눌렀지만 내 공은 늘 한 쪽만 둥글어지려 한다’는 내용은 남편 덕훈 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독자 대부분의 마음일 것이다.

한재경이란 남자와 경주, 일산에서, 남편과는 서울에서 이중 살림을 사는 인아는 그야말로 슈퍼우먼이다.

재경과의 결혼이 호적에 올릴 수 없는 것이지만 엄연한 사실혼이며, 덕훈과는 법적인 부부다. 그 두 살림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인아에게 동성적인 친구와의 즐거운 시간이나 개인의 문화를 만끽하는 것은 사치였을까?

딸 지원이의 탄생으로 빚어지는 사건은 핏줄에 강한 연민을 가진 에피소드로 점화되었다.

서로 자기 딸일 것이라는 두 남자와 내 아이라는 한 여자의 강한 집념. 그리고 그 아이가 받아들일 가치관의 혼란을 걱정하는 덕훈과 애정을 쏟으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한 남자와 여자.

지원이의 미래, 아니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카테고리가 버거워 이민을 선택하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 된다.

제아무리 제도권을 이탈하려고 몸부림치지만 어쩔 수 없이 사회의 시선을 탈피할 수 없다는 요즘 사람들의 몫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어서 다소 아쉬웠다.

어쩌면 처절하리만큼 사회의 벽과 부딪혀 싸우는 과정이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나는 인아의 선택과 다르게 살고 싶다.

끊임없이 사랑을 꿈꾸고, 그 사랑을 지키고 싶지만 나는 이중적인 삶은 단호히 거부한다.

꼭 결혼을 하여 살을 맞대고 살아야 사랑을 이루는 것일까?

그렇게 두 사람을 가슴에 품고 살면서 개인은 행복할 수 있었을지 모르나 한 남자의 가슴에 비수까지 꽂으며 그런 생활을 영위해야 했을까?

폴리 아모리스트들이 꿈꾸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마음적인 여유가 내겐 아직 없다.

사랑.

늘 그리움의 동경 속에 꿈틀거리는 화두이지만 조금은 경건한 마음으로 하고 싶다. 인아가 아닌 내가 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