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은 광목 커튼에 매달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김연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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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너는 상상하는 대로 세계를 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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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올리버의 [기러기]란 시에서 따온 김연수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나침반님의 책 소개를 보고 읽어보게 된 책.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문학동네에 연재되었던 소설을 묶어서 출간했다고 하는데 나는 1970년 경북 김천 출생의 김연수 작가를 아직 모른다.
1990년대 초의 치열한 학생운동을 타자가 되어 리포트를 쓰듯 서술했는데, 직접 체험하지 못하여 자칫 관념의 노예화가 되어버릴 수도 있었을 것인데 작가는 학생운동의 질곡과 그 가운데에 서서 느꼈던 인간적인 외로움을 잘 표현하여 소설을 읽는 내내 '나'가 되어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남양군도에서 할아버지가 가져왔을 것이라고 추정된 입체누드 사진으로 부터 소설은 출발한다.
남양군도의 외딴 섬에 고립되어 죽을 날만 기다리면서 서양 여자의 입체 누드사진을 들여다보는 한 젊은 병사의 심리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한다.
현실은 감각을 통해서 드러나느데 성 요한은 이를 "존재의 가장 어두운 밤"이라 했다.
그 밤을 경험하지 못하면 진정한 행복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학생운동의 간부가 되어 민족해방을 위해 일을 하는 '나'는 항상 외로움과 사투를 벌인다.
특히 운동권 학생들끼리의 사랑의 감정은 금기되어 있고, 개인적인 모든 것은 이해받을 수 없는 그들의 세계.
그러나 감정이란 것이 쉬이 억제할 수 있던가?
정민이란 운동권 학생을 사랑하면서 '존재의 가장 어두운 밤'을 통해 행복을 느껴가는 '나'.
한 시대의 상처는 개인의 내면(대뇌와 성기사이)에서 치유될 수 밖에 없음을 알아가는 '나'.
남들에게 사랑한다 말할 수 없는 슬픔은 있어도 둘은 열렬한 사랑에 탐닉한다.
어느날 학생 예비대표의 자격으로 독일로 떠나는 '나'.
철저하게 비밀로 조직된 나'는 지령에 따라 움직이지만 외로움은 여지없이 따라 다닌다.
독일에서 '나'는 이길용(강시우)을 만난다.
"인간이 개가 되는 열 한 가지 방법에 대해서
첫번째, 당신의 고추에 가시나무 전신주를 연결해 몸에 불을 밝혀라
두번째, 눈알이 든 소켓에 제방을 설치하고 푸른 바닷물을 받아 들여라"라며 사회비판적인 시를 썼던 광주의 랭보, 안기부의 프락치, 사기꾼이자 협잡꾼인 남자, 일본 여자 레이를 사랑한 강시우, 교수인 상희를 사랑한 이길용을 만난다.
강시우(이길용)는 안기부의 프락치임을 기자회견을 통해서 밝힌다.
신변의 안전에 위험을 느낀다는 레이의 부탁에 의해 강시우와 한 아파트에 잠시 기거한 '나'.
더 많은 빛을 얻기 위한 순례를 위해 강시우, 나, 레이는 여행을 떠난다.
여행의 끄트머리에서 안녕을 고하며 아무말없이 둘만 배에 오른다.
이유도 모른채 그들과 헤어지며 안녕이란 인사도 없이 가벼운 포옹만 하고 항구를 떠나왔는데
온갖 매체엔 전대협 소속의 '나'가 레이와 강시우를 평양으로 입북시켰다는 기사가 활자화된다.
한국으로 돌아가 지긋지긋한 외로움을 벗어 던지고 싶어하던 청년의 꿈은 그렇게 좌절된다.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
그 기억속에 체온이 부족해서 생기는 외로움, 그리움이 있다면 치유되어야 마땅한 일.
정민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 외로움을 달래는 '나'는 아직도 조국에 입성하지 못하고 망명자로 사는 운동권 학생들의 자화상은 아닐까?
좀 더 넓은 사고의 전환을 통해 그들을 안아주는 우리들의 의식이 절실히 필요한 2008년이길 소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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