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은 광목 커튼에 매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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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푸트니크의 연인(무라카미 하루키)

데조로 2009. 4. 27. 20:28

소설은 강렬히,

때로는 내면의 울림을 더듬는 촉수처럼 찾아올 때가 있다.

제목만 보면 다분히 로맨스적 요소들의 집합체처럼 느껴지지만 읽을수록 이성에 구멍이 뚫린듯,

원초적인 인간과 자아정체성을 마주해야 하는 '스푸트니크의 연인'

하루키의 작품이다.

 

 

1957년 10월 소련이 세계 최초로 쌓아올린 인공위성이 스푸트니크이고, 그 해 11월에 2호를 쏘았다가

회수하지 못한 인공위성에 라이카 견이 탑승해 있었다. 스푸트니크가 우리들의 외형적인 모습이라면 라이카 견은 어쩌면

우리들의 내부에 존재한 그 어떤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하루키는 철저하게 그 양면성을 대립시키며 소설을 이끌고 있다.

 

소설가 지망생인 22살의 '스미레'와 초등학교 교사인 '나', 그리고 한국 국적을 가진 39살의 유부녀 '뮤'가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다.

스미레와 나는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며 정신적인 지주이다.

스미레를 향한 내 마음은 사랑이고 수시로 생기는 성욕을 자제할 수 없을만큼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녀는 나에게 전혀 성욕을 느끼지 못하며 소통을 위한 유일한 창구로, 교감을 나누는 친구로만 대한다.

넘을 수 없는 장벽에 나는 좌절을 수시로 느끼지만 친구로서라도 그녀를 가까이 두고 싶다.

그런 그녀가 사랑을 느끼는 대상이 생겼는데 사업을 하는 한국 국적의 유부녀 뮤다.

스위스 관람차 안에서 홀로 남겨진 채 또 다른 자기와 뚜렷한 영상으로 만나고 난 뒤부터 저쪽의 '나'와 이쪽의 '나'로 분리되는 것을 느낀 '뮤'. 그 후로는 하얀 머리카락을 가지게 되고, 그 누구와도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 슬픔을 갖고 있는데 그런 뮤를 사랑하게 된 스미레.

그러나 사랑을 고백하고 그 사랑을 나누려는 찰나에 느끼는 암담함과 뮤의 태도에 일방적인 사랑을 느낀 스미레는 홀연히 사라지고 만다.

사랑.

아름다운 단어이고 생활에 활력을 주는 에너지원이지만 서로 소통하지 못한 사랑은 절절한 슬픔일 수 밖에 없다.

러시아 말로 스푸트니크는 '여행의 동반자'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세 사람은 각각 멋진 여행의 동반자지만 자신의 궤도를 갈 수 밖에 없는 스푸트니크의 연인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들의 사랑도 결국은 모두 스푸트니크의 연인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끝없이 고독해하고 외로워하며 진정으로 내 소유물이 될 수 없는 감정의 평행선에 화가 나기도 하고, 그것에 지나치게 몰두하게 된다.

하루키가 한 인간의 내면적 세계에서의 갈등을 샴 쌍둥이에 비유하며 감정과 이성이 동지임과 동시에 대립적 관계라는 사실을 가르쳐 준 것처럼......

우리들은 영원히 같이 할 수 없는 스푸트니크의 후예들이다.

지금부터라도 주어진 인연에 감사하며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고 너무 깊은 철학적 해독에 매달리지 말자.

수많은 스푸트니크가 등장하여 우주를 돌고 '나'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인식하는 매개체는 날마다 증가하고 있다.

특히 사람들의 인식과 시선. 

그 하나하나의 시각에 너무 갇혀있지 말자.

 

오랜 시간에 걸쳐 읽은 탓인지 줄거리가 가물가물하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쳅터씩 읽다보니 그 흐름을 잊어버려 자주 앞 뒤를 뒤적이며 읽어야했지만 하루키의 문장이나 그가 전달해주고 싶어하는 메시지는 희망적으로 품고 싶다.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날씨가 스산하다.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다면 상대에게 지금부터라도 최선을 다하자.

열정적인 가슴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