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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투와 애욕의 갈림길에서(영화 후궁을 보고)

데조로 2012. 6. 7. 23:28

매스컴의 대대적인 전방위 홍보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의 등장으로 꼭 개봉되는 날 보고 싶어 기다렸던 영화다.

김대승 감독, 조여정(화연 역), 김민준(권유 역), 김동욱(성원대군 역) 주연의 영화 후궁(2012년).

영화 제목을 왜 '후궁'으로 정했을까하는 의구심이 남는 영화였다.

 

병약한 형을 둔 이복 동생 성원대군은 유랑을 하다 참판의 딸인 화연을 알게 되고, 그 여인의 매력에 자석처럼 그 집을 들락거린다.

그러다가 그 집에서 데려다 기른 권유와 화연이 사랑하는 사이임을 눈치채지만 화연을 향한 불꽃같은 열정을 숨기지 못한다.

현재의 왕을 독살하고, 친 아들을 왕으로 삼기위한 대비의 음모가 이미 진행중이던 때, 그 사실을 알게 된 대비는 아들이 왕이 되어도 절대 범할 수 없도록 화연을 후궁으로 들여 왕의 아내로 만들어 버린다.

이때 두 남자의 절규가 스크린을 가득 메웠다.

화연과 함께 도주를 하다 들켜서 거세를 당해 남자의 역할을 하지 못한 권유 그리고 사랑한 여인이 형수가 되어 포기를 해야하는 성원대군.

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까?

남편을 잃은 후궁(조여정)과 아들, 왕이 되었지만 대비의 수렴청정으로 왕의 권력을 누리지 못한 허수아비 성원대군, 거세를 당하고 내시로 궁에 들어온 권유가 각각의 위치에서 궁의 암투와 권력 이양 등으로 끊임없이 갈등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선왕의 후궁과 아이를 없애야 한다는 대비 측과 선왕의 후궁을 곁에 두고싶은 성원대군, 자신을 거세시킨 화연의 아버지를 향한 복수심에 불탄 내시 권유의 연기와 간간히 스크린을 채운 숨막히는 에로티시즘은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사랑이란 그런 것일까?

한 여인을 흠모한 탓에 어느 여인하고도 사랑의 감정을 교류하지 못하는 남자, 권유의 거세 사실을 모른 채 화연을 만나러 궁에 들어왔다고 오해하며 벌이는 광란의 질투를 보며 마음 골 깊이 사랑을 새기면 저럴 수도 있겠구나하는 부러움이 탄식처럼 나오기도 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그 연모의 징표로 준 선물을, 치장하거나 표현했을 때에, 주는 사람의 마음은 설레임이나 감사함이 더 배가될 것은 분명한 사실, 우여곡절 끝에 머리를 치장하는 비녀를 꽂고 성원대군을 만난 후궁. 자신이 준 선물을 하고 온 후궁을 보고 마음 가득 희열과 설레임을 느끼는 남자.

처음이자 마지막인 정사를 벌이는 두 사람. 후궁의 눈은 묘하게 슬퍼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야심에 가득찬 듯 하나  성원대군은 희열로 가득 차 있다.

가채에 꽂아둔 비녀를 빼어 정사 중에 성원대군의 목구멍을 찌르는 후궁.

목에서 흘러내린 피를 쓰윽 닦고 확인만 할뿐 후궁을 밀어내거나 저주하지 않는 모습이 참 처량하고 슬퍼보였다. 마치 자신의 미래를 알고 있었다는 듯.

권력이란 세상의 단물이라 했던가?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옹립하기 위해 또다른 암투를 벌였던 후궁에게 성원대군은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을까? 인정받지 못한 사랑일지라도, 미친 사랑일지라도 사랑은 사랑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후궁의 아들이 권유의 아들이라는 것, 대비가 음모를 꾸민 신하와 욕정의 관계라는 것, 권력의 이동에 따라 움직일 수 밖에 없는 내시들의 기구한 운명 등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장치들에 의해 많이 보여지지 않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사랑과 권력은 어쩔 수 없는 애증의 순환 고리인 것 은 분명한 것 같다.

 

첫 날 평점이 별로 좋지 않다고 인터넷에 난리지만 시원한 눈요기(?)와 조연배우들의 감초 연기 등이 괜찮았던 영화다. 내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