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은 광목 커튼에 매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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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이야기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를 읽고

데조로 2010. 5. 29. 22:54

친구에게서 권비영 작 [덕혜옹주] 책을 선물 받았다.

후배의 블로그에서 그녀의 일대기를 대강 읽었지만 덕혜옹주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호기심을 갖고 그 책을 대할 수 밖에 없었다.

황녀.

그렇지만 조선의 황녀로 살아보지 못한 한 여인.

고종이 회갑때 얻은 딸이 덕혜옹주다.  

 

 국권을 침탈당한 시기가 시대적 배경인 것을 보면 얼마나 많은 슬픔과 고통이 깔려있을지 짐작할만하다.

고종과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보아야 했던 어린 황녀.

힘을 가진 자(일본의 앞잡이)가 득세하는 세상에서 자존감을 가지고 왕족으로 살아가기에는 많은 장애가 있었다.

덕혜라는 이름을 가진 대가로 일본에 볼모로 가야하는 조선의 여인은 서걱대는 갈잎처럼 마음을 할퀴는 그리움을 지워내느라 난을 친다. 시커먼 먹물이 화선지에 번지면서 마음 속 형상이 된다. (P147)

얼마나 그리웠을까?

자아정체감이 확립되는 중요한 시기의 10대에 타국에 갇히는 슬픔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눈물로 밤을 지새고, 데리고 간 복순이와 친자매처럼 나누는 그리운 조국의 이야기에 가슴 한 귀퉁이에 찬 바람을 키우며 산다.

그 바람이 날카롭게 번득이며 눈앞을 오가도 쉬이 조국행을 감행할 수도 없는 덕혜옹주.

일본과 일본의 하수인인 한국인들의 의지대로 일본 사람과 강제 결혼을 하게 되는 옹주는 탈출을 꿈꾼다.

그러나 감시의 대상이 된 그녀는 꼼짝할 수 없고, 그녀를 모시기위한 김장한(조국에 있을 때 결혼을 할 뻔한 남자) 사단의 계획을 알게 된 옹주는 잠시나마 행복한 상상을 꿈꾼다. 거사를 눈치챈 일당에 의해 수포로 돌아가지만 김장한의 계획이 성공했다면 어찌되었을지..... 독자로서는 즐거운 상상을 더불어 해본다.

 

일본인 남편

대마도 번주의 아들인 소 다케유키는 젠틀한 편이었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진행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물론 조선인인 덕혜가 일본인처럼 살아가기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그러나 치유할 수 없는 모국에 대한 그리움과 일본에 대한 적대감에 쉬이 받아들일 수 없는 옹주.

운명처럼 공주 정혜가 태어났다.

그러나 정혜의 운명에 정체성이 흔들리는 덕혜는 혼란스럽고, 그 혼란스러움이 오래도록 따라다니는 우울증과 공허함까지 더해져서 조발성 치매를 가져온다.

복순에게만 의지하는 덕혜때문에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자 복순을 쫓아내자 덕혜는 더 큰 슬픔 속으로 빠져든다.

그리하여 10여년을 정신병원에서 수감된 채 생활하다가  조국으로 돌아온 덕혜옹주.

이 책을 쓴 작가가 귀국 후의 삶은 차마 쓰지 못했다고 고백한 것처럼 귀국 후의 그녀의 삶이 평탄치 않았음을 우리는 안다.

낙선재에서 기거하다가 77세로 삶을 마감한 후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고종의 무덤 뒷편에 모셔졌다고 하는 덕혜옹주의 낙서장에  이런 귀절이 남아있어 모두를 더 슬프게 만들었다.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영친왕), 비전하(이방자여사) 오래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읽고난 후 가슴이 먹먹해졌다.

망국의 설움을 수많은 책자와 매스컴을 통해 익히 알고 있지만 부모없이, 조국없이 살아야했던 그녀의 마음에 서슬푸른 다짐이 돋아날 때마다 어떻게 이겨냈을지. 그녀의 조발성 치매가 그냥 이해되어 버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지구촌 시대는 여전히 이권을 위한 강국들이 약소국을 침탈하기 위해 안간힘이다.

물론 보이지 않게 서서히 진행되어 감지하기 어렵지만 우리도 정신 바짝 차리고 국력 강화와 더불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 불을 지펴야겠다는 짧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