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은 광목 커튼에 매달려
한 해를 마무리할 즈음에 본문
내가 근무하는 곳은 연말이 다가올수록 눈코뜰새없이 바쁘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바쁘지 않을 사람이 없겠지만 1년 동안의 결과물을 정리하느라 여유있게 차 한잔 마주할 시간이 없다.
특히 아이들의 성장과 아랑곳없이 그때 그 상황을 그대로 써서, 훗날 재생될 수 밖에 없는 기록물을 마주하고 있으면 만감이 교차한다.
공부는 못하지만 심성이 무척 고운 아이, 공부는 잘하지만 너무 이기적인 아이, 너무 자기 중심적인 아이, 내 눈을 피해서 온갖 나쁜 짓은 다 하고 다니는 아이, 내 앞에서만 착한 척하는 아이 등을 어떻게 서술해야할까?
대면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름 뒤에 맴도는 그들의 품성과 성적을 어떻게 적어야할지 적지않이 고민한다.
그들과 전혀 다른 별개의 내용을 쓸 수 없는 일이라 좀 더 세세히, 좀 더 긍정적인 표현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요즘의 일과가 많이많이 지치게 한다.
내가 객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일까하는 의구심이 시도때도 없이 사람을 괴롭히고....
생의 문신처럼 오래오래 따라다닐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결정도 쉬이 내리지를 못한다.
다른 때 같으면 끊고 맺음이 분명한 사람인데....
또 눈이 내린다.
일을 하다 잠시 밖을 보니,부산히 낙엽을 옮기던 바람이 눈을 옮기느라 분주하다.
추위 따위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은 벌써 운동장을 반쯤 채우고 있다.
볼이 빨개질 정도로 눈속을 질주하며 여러 풍경을 만들어 내는 아이들.
눈을 뭉쳐 던지는 아이도 있고, 미끄러울텐데 공을 차는 아이도 있고, 눈사람을 만드는 아이도 있고....
무심코 쳐다본 시선으로 인해 조금은 바쁜 일과에서 벗어나는 행운을 얻었다.
얼마나 즐거울꼬?
바깥 풍경을 보니 옛날 모습이 클로즈업 된다.
마당 가득 쌓인 눈을 보고 내복 차림으로 눈사람을 만들었던 기억, 눈을 바가지에 담아와 방에서 놀다 사라진 눈사람 때문에 울었던 기억, 비료 푸대를 하나씩 쥐고 나와 언덕에서 썰매를 타던 기억.....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애잔한 그리움으로 남은 추억인데, 요즘은 눈내리는 풍경이 그리움 속에서만 낭만적이다.
잦은 눈으로 인해 힘없이 무너지는 축사며, 비닐하우스 시설로 인해 푸념을 넘어 생의 고비를 마주해야 하는 우리 농민들의 한숨 소리가 들리고, 내일 아침 차를 몰고 직장에 갈 일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니.....
생활인이 더 깊숙하게 내 감성의 무게중심을 잡고 있다.
저렇게 자연을 누비며, 이쁘게 있는 아이들이 가끔씩 사회 부적응아로 남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빛은 어둠 속에서 더 찾기 쉽다고 하는데, 나는 그 빛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어두워지는 원인만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득, 우리 아이들의 장점을 더 많이많이 기록으로 남겨 그들에게 희망의 불씨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대신, 우리 아이들이 좀 더 고운 심성으로 살아주었으면 좋겠다.
사랑을 듬뿍듬뿍 공유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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