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은 광목 커튼에 매달려
생과 사를 넘나들던 어제.... 본문
대설주의보가 내린 어제는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날이었다.
퇴근을 하면서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눈이 더 많이 내릴 것을 걱정하여 다른 사람들보다 서둘러 직장을 빠져 나왔다.
함박눈은 운전이 힘들 정도로 유리창에 부딪혔다.
이미 앞 유리를 가득 메운 눈을 털어내고 출발하였지만 거세게 쏟아지는 눈발은 추운 날씨와 궁합까지 맞아서 유리에 그대로 얼어 붙었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도로는 쉽게 뚫리지 않고, 한 번씩 곡예를 하는 차를 운전하면서 이렇게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냉기 속에 몰려왔다.
눈(snow)에 관한 달콤한 발라드 노래며, 하늘에서 선녀들이 뿌려준다는 동요가 먼 나라의 이야기나 되는 것처럼 내 앞을 가로 막고 선 눈발을 보면서 무서움이 꿈틀거렸다.
여태 이렇게 많은 눈사태를 경험하지 않은 나로서는 참으로 막막하기만 했다.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눈발을 보면서 아직 출발하지 않은 동료들이 어디 만큼 갔으며, 지금의 도로 상황은 어쩐지를 자꾸 물어왔다.
중계를 하던 나는 그만 도로 위에서 꼼짝달짝하지 못하고 갇혀버렸다.
오르막 길을 가는데 차가 계속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전진을 하지 못하고 1. 2차선의 중앙에 고정되어 버렸다.
엑셀을 슬그머니 밟아봐도 헛바퀴만 돌고.....
다행히 뒤에 따라오는 차가 없어서 큰 사고를 당하지 않은 것만 해도 요행이었다.
비상등을 켜고 한 참이나 있었을까?
대형 화물차들이 뒤따라 왔다.
아! 그대로 밀어버리면 어떡하냐?
마음은 지옥을 수없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비상등을 멀리서 본 차는 다행히 한 참 뒤에서 더 움직이지 못하고 내 차를 주시하고 있었다.
또 핸드폰이 울린다.
"어떻게 그리 용감하게 갈 수 있느냐?
우리는 가다가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차를 길가에 파킹시키고 그대로 걸어서 학교에 다시 왔다"며 조심하라는 멘트였다.
이미 고립되어 무서움과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데.....
내 차를 너무 과신한 탓과 날씨를 오판한 내 판단력에 후회가 밀려왔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옆에 누군가 동승을 했다면 불안감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었을 텐데.....
주변에 있는 모래주머니를 옮겨 뿌려봐도 차는 움직이질 않았다.
한 참이나 차 속에 갇혀 떨고 있었을까?
염화칼슘을 실은 차가 역주행을 하면서 내 차 앞에 염화칼슘을 뿌려주고 난 후 한 쪽으로 비켜섰다.
그래서 간신히 오르막을 오르니 또 차가 제멋대로 질주(?)를 했다.
온갖 묘기를 다해가며 차를 길섶에 파킹시켜 뒷 차를 소통하게 해주었지만 뒤 따르던 차들도 역시 곡예를 하며 여기저기 상처(?)를 입은 채, 걷는 것보다 늦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대로 차를 두고 가고 싶어도 어중간한 자리인지라 쉽게 이동을 못하며, 인가도 없는 도로 위에서 혼자 차에 갇힌 내게 엄습한 고통...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차 안에 있던 뜨개질 감을 꺼내서 뜨개질을 하였다.
그랬더니 마음이 침잠되어 가고.....
보험회사에서 출동할 수도 없는 상황이며, 누구에게도 SOS를 청할 수도 없는 상황에 철저히 혼자인 나.....
시간이 지날수록 날은 어두워지고.....
포스코에서 나온 차량으로 인해 도로는 완전 주차장으로 변해버렸다.
서서히 엑셀을 밟아보았다.
그랬더니 꿈같이 조금씩 움직였다.
조심조심하면서 주차장으로 변한 도로에 합류하여 거대한 불빛 뒤를 따라 아주 느리게 순천을 향해가는 차량의 행렬이 초파일의 연등 같았다.
순간 선하게 살아야겠다는 무언의 메시지가 마음 속을 떠나지 않고 붙들고 있었다.
평상시에 10분 정도 소요되는 길을 장장 4시간 동안 떨면서 있었다.
기름이 다 소비될까 싶어서 히터도 작동하지 못한 채.....
날이 어두워지니 빙판길이 되어 몇 번의 곡예를 반복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동안 순천까지 가는 것은 무리이니 중간에 차를 파킹하고 차를 얻어타라는 문자도 오고, 조언을 아끼지 않은 사람들의 전화가 계속 쏟아졌다.
고마운 사람들.....
순천까지 가는 것은 무리겠다 싶어서 1/3지점인 광양에서 동생집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러나 가는 길목도 만만치 않았다.
또 헛바퀴만 돌며 경사진 곳을 오르지 않아 후진을 하여 길가에 차를 파킹시키고 한 참이나 떨어진 아파트를 향해 푹푹 빠진 눈길을 걸었다.
걸으면서도 생리적인 현상을 억제하는 것은 내 인내심의 한계를 넘나들었다.
이런 고통....
체험으로 얻을 수 밖에 없는 이 모호한 하루.....
동생 집에 도착하니 동생 내외는 걱정을 덜어내며 반가움으로 맞았다.
연이어 내일은 휴교니 푹 쉬라는 선생님의 전화가 이어지고.....
순천으로 넘어오지 못한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모텔을 잡아서 재미있는 저녁문화(?)를 가졌다는데, 성질 급한 나는 사투를 벌이며 대재앙과 싸우고 있었으니....
어쩐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미 내게 값진 추억을 선사했으니....
아직도 눈이 조금씩 내리고 있다.
내일 어떻게 학교로 향할지 걱정이 되지만 이번엔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근을 할 것이다.
내 고집을 이젠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교직경력이 20여년을 향해 가고 있지만 처음으로 기록된 오늘의 휴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뜻있는 하루였다.
눈이 감상의 잣대가 아닌 재앙으로 다가온 어제와 오늘같은 날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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